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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주식도 '현금 입장권'…현금부자만 자산증식의 기회 부여되는 세상 [쓸만한 이슈]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주담대 6억원 제한 이어 레버리지 투자도 현금 3000만원 청년들 "자산 형성 길 막혔다"·"현금 부모 둔 자식만 혜택" 전문가들 "레버리지 투자 시대 한계" 공감…해법은 엇갈려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계속되며 올해 3분기에도 은행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일 서울 시내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계속되며 올해 3분기에도 은행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일 서울 시내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부동산을 사려면 집값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고, 고위험 주식상품에 투자하려면 계좌에 현금 3000만원을 보유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가계부채와 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부동산 대출과 레버리지 투자를 동시에 조이는 고육책을 내놓으면서다.

말 그대로 정책 취지는 과도한 빚과 투기적 투자를 막는 데 있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현금이 있는 사람만 집도 사고 투자도 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15억원 넘는 집은 대출 4억원…25억원 초과는 2억원

현재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할 때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에 따라 차등 제한된다.

지난 4월 금융위원회는 '2026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통해 시가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지만,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4억원, 25억원을 넘는 주택은 최대 2억원으로 한도가 줄어들도록 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도 금융위는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통해 수도권 중심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놨다.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하고 대출 만기를 30년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낮추고 6개월 이내 전입 의무를 부과했다. 신용대출을 주택 구입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도 막았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더 강하다. 수도권·규제지역에서 2주택 이상 보유자가 추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1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은 채 추가 주택을 사는 경우 주담대가 금지된다.

두 조치 모두 가계부채 증가와 갭투자, 고가주택 매수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집값과 대출 한도의 차액을 모두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가령 수도권에서 15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하려면 최대 6억원을 대출받더라도 취득세와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최소 9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20억원짜리 주택은 필요한 현금이 16억원으로 늘어났고 25억원을 넘는 주택은 대출이 최대 2억원에 그쳐 사실상 현금 자산가 중심의 시장이 된다.

레버리지 ETF도 현금 3000만원이 '입장 조건'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당국은 31일부터 국내외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을 신규 또는 추가 매수하려는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현금 3000만원 이상의 기본예탁금을 요구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현금과 주식·ETF·채권 등 대용증권을 합해 1000만원 이상의 예탁금을 보유하면 투자할 수 있었다. 주식과 채권은 시가의 70%까지 예탁금으로 인정됐다. 앞으로는 이 같은 대용증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오직 현금으로만 3000만원을 유지해야 한다.

보유 주식을 매도해 현금을 마련하더라도 매도 당일에는 예탁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제가 완료돼 실제 현금이 입금되는 이틀 뒤에야 예탁금으로 인정되며, 매도대금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도 현금 예탁금에서 제외된다. 기존 투자자도 상품을 추가 매수하려면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 것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거래가 급증하고 주가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당 상품은 특정 주식의 하루 수익률을 통상 두 배로 추종해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이 확대되지만 하락하면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위험은 줄이지만 기회도 현금 순으로

두 정책은 적용 대상과 목적이 다르다. 부동산 대출 규제는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있고, 레버리지 ETF 규제는 투자자 손실과 금융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다만 개인이 체감하는 결과는 비슷하다. 빚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줄고 자산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현금은 늘었다.

규제 이전에는 소득과 신용이 뒷받침되면 대출을 이용해 주택을 구입하거나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부동산에서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자기자본이, 주식시장에서는 최소 3000만원의 현금이 사실상의 입장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온라인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과도한 대출과 투자를 줄이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근로소득이 빠르게 늘지 않는 상태에서 대출만 줄이면 무주택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 시기를 더 늦출 수밖에 없다.

레버리지 ETF 역시 투자자의 위험 감수 능력을 금융 지식이나 소득, 투자 경험이 아닌 보유 현금 규모로 판단한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현금 3000만원이 있다고 해서 투자 위험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볼 수 없고, 반대로 현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금융 이해도가 낮다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학자도 "레버리지 중심 시장은 한계"

경제학자들도 현금 보유 여부가 자산 형성 기회를 좌우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레버리지 중심의 자산시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여기서 레버리지 중심의 자산시장은 자신의 자본보다 많은 돈을 빌려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에 투자해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방식이 시장 전반에 확산된 상태를 말한다. 자산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부를 빠르게 늘릴 수 있지만, 하락기에는 손실도 배가되는 구조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0년간 이어진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가 돈을 빌려 자산에 투자하는 문화를 정상적인 자산 형성 방식처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가계는 저축하고 기업이 자금을 빌려 실물에 투자하는 것이 경제의 기본 구조인데, 저금리와 금융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가계가 빚을 내 부동산과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며 "가격이 급락하면 돈이 없는 투자자부터 강제 매도에 몰리고 결국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부가 이전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출 규제를 다시 풀어 청년층에게 '영끌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봤다.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와 적정 가격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부동산 보유에 따른 세 부담을 강화해 자산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정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 석좌교수 역시 자본시장이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보다 단기 투기시장으로 변질됐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한 3000만원 예탁금 요건도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는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오 교수는 부동산 문제의 원인을 대출 확대보다 공급 부족과 정부 규제에서 찾았다. 재건축·재개발을 포함한 주택 공급을 충분히 늘리지 않은 채 대출과 세금으로 수요만 억누르면 현금 부자만 시장에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출을 막으면 자금이 부족한 청년과 실수요자부터 시장에서 밀려난다"며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접근보다 시장이 요구하는 지역에 주택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레버리지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자의 진입 자체를 현금 규모로 제한하는 것과 함께 레버리지 배수를 현행 두 배에서 1.5배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출을 풀 것인가'를 넘어 자산 형성 구조 바꿔야 할 때

현금 중심 자산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예탁금 기준을 다시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부동산에서는 실수요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고 근로소득과 집값의 격차를 줄이는 대책이 병행돼야 하며 금융시장에서는 고위험 상품의 진입 기준을 현금 규모에만 의존하기보다 투자자 교육과 손실 감내 능력, 투자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단기 수익을 좇는 직접투자보다 연금과 펀드, 기관투자를 통한 장기·분산투자를 활성화하고 금융회사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도 요구했다. 집값과 금융상품의 위험은 그대로인데 자금 조달 수단만 줄어들면 현금을 이미 축적한 계층의 우위만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얼마까지 빌려줄 것인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경로로 자산 형성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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