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식습관'에 중장년층도 게실염 위험경보
육류 위주 식습관과 변비..대장 내 '주머니' 만든다
"맹장염인 줄 알았는데"..우하복부 통증 유의해야
무조건적 항생제·수술 최소화, 환자맞춤형 치료 대세
온병원 소화기내과, "고섬유질 식단-수분보충으로 예방"
[파이낸셜뉴스] # 평소 육류 위주의 식사를 즐기고 바쁜 업무로 채소 섭취가 적었던 직장인 김모씨(58). 얼마 전부터 찌르는 듯한 오른쪽 아랫배 통증과 열감을 느꼈으나 단순 소화불량이나 맹장염 정도로 여겨 참았다. 그러나 며칠 뒤 배 전체가 판자처럼 딱딱해지고 가누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응급실로 이송됐다. 진단 결과는 '게실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 대장에 생긴 주머니(게실)가 터지면서 장 내용물이 복강 내로 흘러들어간 응급상황이었다. 김 씨는 결국 응급 대장 절제 수술을 받고서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씨를 위기에 빠뜨린 게실염(Diverticulitis)은 대장 벽이 풍선처럼 바깥으로 튀어나와 형성된 작은 주머니(게실)에 대변 등 이물질이 차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과거 게실염은 장벽의 탄력이 떨어지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고지방·저섬유질 식단이 정착하면서 30∼50대 중장년층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장의 게실병' 환자는 최근 연간 6만7000명 이상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체 환자 중 40∼50대 중년층이 약 절반(45∼50%)을 차지하며, 남성이 여성보다 약 1.3∼1.5배가량 많다. 특히 아시아권의 경우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잘 발생하는 '우측 대장 게실' 비율이 높아, 30∼40대 젊은 층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부산 온병원 소화기내과 이명진 과장(소화기내과전문의)은 26일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하면 대변 양이 줄고 딱딱해져 배변때 대장 내 압력이 크게 상승한다"며 "이 압력으로 인해 장벽 중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면서 게실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균이 침투하면 염증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게실이 튀어나와 있는 상태 자체(게실증)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그러나 게실염으로 진행되면 갑작스러운 하복부 통증과 고열, 오한, 배변 변화(설사 또는 변비) 등이 나타난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은 오른쪽 아랫배에 게실염이 잘 발생해 초기 통증 양상이 충수염(맹장염)과 매우 유사하다. 이 때문에 증상을 방치하거나 자가 진단으로 약만 복용하다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염증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게실 벽이 찢어지는 '장 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실이 터지면 대장 안의 오염물질이 배 안으로 퍼져 급성 복막염과 패혈증을 유발하며, 이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합병증이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게실염 치료에 있어 무조건적인 항생제 투여나 예방적 수술을 최소화하고 환자 상태에 맞춘 보존적 치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통증과 염증이 경미한 초기 단순 게실염의 경우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 대신 수분 섭취와 미음 등 유동식 중심의 장 휴식을 통해 자연 회복을 유도한다. 다만 고열이나 높은 염증 수치를 보이는 환자, 면역저하자 등에게는 선별적으로 항생제 치료를 병행한다.
고름집(농양)이나 미세 천공이 발생한 중증 합병증 단계에서도 곧바로 개복 수술을 진행하기보다는 피부를 통해 관을 넣어 고름을 빼내는 '경피적 배액술' 등 비수술적 시술을 먼저 시도한다. 과거와 달리 재발 횟수만으로 대장을 절제하던 방식 역시 지양되는 추세다. 장 천공이나 복막염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복강경이나 로봇을 활용한 대장 절제 수술을 시행한다.
게실염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장 내 압력을 낮추는 식습관과 생활 습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붉은 고기나 가공육, 정제 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이고 현미, 잡곡, 채소, 과일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매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수분 부족은 변비를 유발해 장내 압력을 높이므로 하루 1.5∼2ℓ 이상의 물을 주기적으로 마시는 습관이 필요하다.
또 규칙적인 운동과 체중 관리는 장 운동을 활성화해 변비를 예방하고 복부 비만으로 인한 장 압박을 줄여준다. 흡연은 장점막을 약화시키고, 소염진통제(NSAIDs)의 장기 복용은 장출혈 및 게실염 위험을 높이므로 관련 약물 복용 시 전문의와의 상담이 권장된다.
온병원 소화기내과 최한일 과장(소화기내과전문의)는 "게실염은 초기 진단때 약물 치료나 식단 조절만으로도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 질환"이라면서도 "발열을 동반한 극심한 아랫배 통증이 느껴진다면 맹장염이나 게실 천공 등 응급 상황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망설이지 말고 즉시 소화기내과나 응급실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변옥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