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나도 암 환자잖아"…동병상련 악용해 1억 뜯어낸 10년 지기의 배신 [사기꾼들]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암 환자 울린 '악마의 탈'
우정 빌미로 암보험금 꿀꺽
안부 챙기는 척 이자 지급
법정선 적반하장 오리발
법원 "죄질 가볍지 않아"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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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자기, 몸이 아파서 일을 못 하니 어떡해. 나한테 2000만원만 빌려주면 월 40만원씩 이자로 주고 5개월 후에 꼭 갚을게. 나도 지금 너무 힘드니까 좀 도와줘."

지난 2022년 7월, 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던 A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지인 B씨(66)였다. 림프암 판정을 받고 항암 시술을 받았던 B씨는, 누구보다 A씨의 고통과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같은 암 환자'라는 깊은 동질감,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걱정해 높은 이자까지 얹어주겠다는 설명에 A씨는 마음이 흔들렸다.

항암치료 중인 지인에게 암보험금 포함 1억 넘게 편취

그러나 B씨의 화려한 약속은 거짓말에 불과했다. 생활비와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던 상황에서 약속한 대로 금융권보다 높은 이율의 이자를 지급하며 원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당시 그는 거주하는 아파트를 담보로 이미 8억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였고, 카드론과 사채 등으로 빌린 돈만 2억원에 달했다. 매달 지출해야 하는 대출 이자만 수백만원에 육박했지만,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B씨의 월수입은 불과 330만원 남짓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지속적으로 돈을 벌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던 A씨는 B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다. 자신의 삶을 지탱할 보루였던 암보험금 중 일부인 2000만원을 B씨에게 송금했다.

B씨의 탐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신뢰와 동질감을 악용해 안부를 묻는 척 다가서며 계속해서 돈을 요구했고, 2022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무려 13회에 걸쳐 총 1억500만원의 거금을 뜯어냈다.

빚 돌려막기 사용·변명 일관…법원 "죄질 무거워 실형"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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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로부터 빼앗은 돈을 B씨는 자녀의 계좌로 보내거나 기존 금융 채무를 갚는 데 썼다. 법정에서 그는 "딸이 운영하는 의류 사업의 재고 판매 수익과 전남편 지인의 토지수용보상금 등으로 갚을 능력이 충분했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딸의 의류 쇼핑몰은 매출이 거의 없어 폐업 수순을 밟고 있었고, 토지수용보상금 역시 B씨에게 지급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장원정 판사)은 지난 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암 투병으로 형성된 신뢰 관계를 악용해 안부를 챙기는 척 접근하고, 이자를 일부 지급하며 지속적으로 거금을 빌린 범행 수법과 편취액을 고려할 때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회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고인이 1000만원을 형사공탁했으나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을 요구하고 있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피고인이 그동안 이자와 원금 명목으로 약 3500만원을 지급하여 실질적인 피해액이 기소액보다 적은 점,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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