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량원펑 이어 양즈린

파이낸셜뉴스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좋아했고, 록에 빠져 살았으며, 방랑시인을 꿈꾼 광둥성 소년.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키미 3'로 세계 시장을 뒤흔든 중국 스타트업 문샷AI 창업자 양즈린(34)의 10대 시절 키워드가 이 한줄에 다 있다. 그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최대 수혜지인 광둥성 차오산 지역 출신이다.

지역 명문고에 들어갔으나 입학 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프로그래머에 눈을 뜨게 해준 것도 하루키의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깊은 밤 홀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코드를 짠다. "이처럼 고독하고 멋진 낭만의 직업이라니!" 훗날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양즈린의 수리, 논리 잠재력을 간파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학교 정보담당 선생이다. 교사의 픽으로 1학년 때 합류한 정보올림피아드반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 놓는다.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고, 밴드에서 드럼 치던 낭만파 고교생은 이제 방과 후 학교 컴퓨터실로 향했다. 졸업 때까지 계속됐다. 맹훈련 끝에 전국 정보올림피아드 광둥성 1위를 거머쥐고 칭화대 특례 입학자격을 얻지만, 굳이 중국의 수능 가오카오를 치러 그 점수로 학교에 입학한 이력도 흥미롭다.

칭화대는 그의 연구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동시에 잠자던 창업가적 야심을 깨운 곳이다. 평생의 자산이 될 핵심 인맥과 거대한 자본 네트워크까지 제공한다. 컴퓨터 학술동아리와 록밴드 'Splay'가 대학생 양즈린의 주 활동 공간이었다. Splay에서 양즈린이 작곡을 할 때 기타를 쳤던 이가 훗날 문샷AI 공동 창업자가 되는 저우신위다. 지금 중국 AI 4대 천황 중 한명으로 꼽히는 탕제 Z.ai 창업자는 당시 양즈린의 학부 지도교수였다. 그렇게 연구의 뿌리였고, 창업의 날개를 달아준 곳이 칭화대였다.

졸업 후 미국에서 지낸 시간은 5년 남짓이다. 카네기멜런대(CMU) 박사과정 중 구글 브레인과 메타 AI에서 연구 인턴으로 일했다. 이 기간 CMU, 구글 연구진과 함께 발표한 논문이 파란을 일으킨다. 트랜스포머가 더 긴 맥락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학습방식을 제시한 것이 핵심인데, 지금의 장문맥 처리와 거대언어모델로 이어지는 기술적 맹아가 여기에 있었다. 미국에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돌아와 창업을 서두른다. 오픈AI의 챗GPT 출시로 생성형 AI의 파괴력을 실감한 뒤 언어모델 기술에 승부수를 던진다. 문샷AI는 이렇게 닻을 올렸다.

문샷의 지난 3년은 파란만장했다. 20만자 장문맥을 처리하는 챗봇 키미로 세계 빅테크들을 충격에 빠트렸으나 이내 쩐의 전쟁에서 밀린다. 추론 모델로 방향을 틀어 키미 1.5를 출시했지만 이번엔 량원펑의 딥시크 쇼크에 묻힌다. 비슷한 수준의 추론 능력에도 훨씬 적은 비용의 딥시크가 화제를 압도했다. 은둔의 시간을 지나 절치부심, 그리고 반전의 기미는 지난해 키미 2를 출시하면서다. 이어 2주 전 내놓은 키미 3가 마침내 챗GPT, 클로드와 대등한 성능으로 평가되면서 대반전에 성공한다. 키미 3는 값싸지 않다. 그 대신 압도적인 성능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술의 최전선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가 그걸 하겠다." 양즈린이 내건 모토였다. 괴물 같은 성능의 키미 3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양즈린은 학교가 발굴해 국가가 키운 인재다. 스스로 미국 최전방으로 나갔고 단련 끝에 돌아왔다. 그보다 7세 많은 량원펑은 중국 대학과 중국 자본시장, 산업 생태계에서 성장한 토종 인재다. 세계의 지식을 흡수할 토대도,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국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제2, 제3의 량원펑, 양즈린은 계속 나올 것이다. '대체불가능한 AI 핵심 국가'를 선언한 우리의 갈 길이 멀다. 잠재력 충만한 10대의 가능성을 찾아내 국가 인재로 제대로 키우는 것부터. 쉽지 않지만 해볼 만한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다.

[email protected]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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