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금리 단층 메우는 새 금융모델
금융이력만으로 대출 안된다 말고
마이데이터 사업자·인공지능 활용
중저신용자 발굴해 포용금융 실현
금융사·이용자 정보비대칭 줄이고
중금리대출 시장 탄탄하게 하려면
새 금융모델 자랄 법제도 만들어야
포용금융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말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신용이 낮거나 금융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금융회사에도 부담이다. 손실을 감수하는 사회공헌으로만 접근하면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포용금융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금리 단차 구조의 해소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면 곧바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높은 금리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위험을 가진 것은 아니다. 꾸준한 소득과 상환 의지가 있지만, 금융이력이 얇다는 이유로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 차이를 기존 신용평가가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금융회사는 불확실하니 금리를 높이고, 차주는 실제 위험보다 더 비싸게 돈을 빌린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차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마이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커진다.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차주를 발굴하고, 대안신용평가로 상환능력을 판단하며, 대출 이후 채무관리까지 맡는 모델을 생각해보자. 저축은행은 자금을 공급한다. 데이터와 고객 접점이 있는 플랫폼은 '눈'과 '관리자' 역할을 하고, 금융회사는 '자금 공급자' 역할을 하는 새로운 분업 모델이다.
기존 신용평가는 대체로 과거의 금융이력을 본다. 물론 필요한 정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더 많은 데이터를 볼 수 있다. 계좌의 입출금 흐름, 카드 소비 패턴, 보험료·연금·청약 납입이력, 현금흐름의 안정성, 소비의 건전성 같은 정보는 한 사람의 현재 상태와 미래 상환능력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같은 중저신용자라도 매달 소득이 꾸준히 들어오고, 필수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소액이라도 저축을 지속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겉보기 신용점수는 비슷해도 현금흐름이 빠르게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 기존 평가에서는 둘이 같은 그룹으로 묶일 수 있지만, 데이터로 보면 다르다. 포용금융의 출발점은 이 차이를 알아보는 데 있다. '다 같이 위험하다'가 아니라 '감당 가능한 위험'을 가려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포용금융은 금융회사에 손해를 강요하는 일이 아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찾기 어려웠던 좋은 고객을 발견하는 일이다. 차주는 불필요하게 높은 금리를 피하고, 금융회사는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한다. 중금리대출 시장이 커지려면 이런 선순환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변화는 대출 이후에 있다. 지금까지 금융은 대출 시점의 심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사람의 상황은 대출 이후에 더 많이 변한다. 소득이 줄 수도 있고, 지출이 갑자기 늘 수도 있다. 고금리 대출을 새로 이용하기 시작하면 위험신호일 수 있다. 마이데이터와 AI를 활용하면 이런 변화를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
위험신호가 보이면 연체가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지출패턴을 점검하고, 상환 우선순위를 제안하며, 더 낮은 금리의 대환 가능성을 찾아줄 수 있다. 자력으로 회복하기 어렵다면 서민금융, 채무조정, 복지 프로그램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대출이 아니라 예방적 금융안전망에 가깝다. 차주에게도 좋고,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부실을 줄이는 길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AI와 대안데이터, 금융기관 간 연계를 활용해 기존 금융이 잘 보지 못했던 차주를 평가하고 자금을 연결하는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했다. 핵심은 대출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더 정확히 평가하고, 더 낮은 비용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포용금융을 시혜가 아니라 사업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우리 법제다. 한국 금융규제는 여전히 사전규제 중심이다. 새로운 금융모델이 나오면 먼저 "어느 업권의 라이선스에 해당하느냐"를 따진다. 그러나 데이터와 플랫폼, 대출심사와 사후관리가 결합된 모델은 기존 업권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차주를 분석하고, 저축은행과 연계해 중금리대출을 공급하며, 이후 채무관리까지 맡는 구조는 현재 법제 안에서 활동 범위가 모호하거나 좁다.
이제 마이데이터 사업자를 단순히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사업자로만 볼 때는 지났다. 금융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중금리대출 시장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 포용금융은 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더 잘 알고, 더 정확히 평가하고, 더 빨리 도와주는 새 금융모델이 자랄 수 있도록 법제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