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재미있게 놀았다면 성공"…놀이가 공연이 된 1박2일, 꿈의 극단 첫 단독 합동캠프[2026 꿈의 페스티벌]
파이낸셜뉴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동기획
오만석 "결과보다 과정"…아이들의 놀이가 한 편의 연극으로
구리·사천·전주 아이들, 대본 없는 공동창작으로 한 무대
[파이낸셜뉴스] "1박 2일 동안 놀이했던 그 모습들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기 위해 이 공연을 마련했습니다." "그럼 바로 공연을 시작해도 될까요?"
13일 오후 4시 30분, 경남 밀양시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무대에 선 두 배우가 객석을 향해 묻자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기존 대극장 일부를 아담한 소극장처럼 꾸며 관객과 배우 사이의 거리를 바짝 좁힌 공간이었다. '꿈의 극단' 아이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나와 "우리는 여기서 처음 만났어요"라고 인사했다. 지난 1박2일의 놀이가 참여형 디바이징 창작공연으로 완성돼 관객과 만나게 된 출발점이었다.
이번 무대는 흔히 떠올리는 연극 제작 방식과 달랐다. 완성된 대본을 나눠주고 배역을 정한 뒤,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맞춰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 아니었다. 아동·청소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꿈의 극단' 구리·사천·전주 소속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친구들 앞에 꺼내놓고, 그것을 노래와 랩, 몸짓으로 표현한 일련의 과정이 그대로 공연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마련한 '2026 꿈의 페스티벌 밀양'은 꿈의 극단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연극 분야 단독 합동캠프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밀양아리랑아트센터와 호텔 아리나 일대에서 진행됐으며, 구리·사천·전주 3개 거점기관 단원 55명을 비롯해 임진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한국연극배우협회 부이사장 겸 현역 배우 오만석 총감독, 꿈의 극단 사천 이훈호 예술감독, 꿈의 극단 전주 김경민 예술감독, 꿈의 극단 구리 문삼화 예술감독 등 관계자 약 140명이 참여했다.
이번 공동창작의 뼈대는 세 극단이 평소 해오던 프로그램이었다. 신바람 합동캠프 기획단 총괄기획 겸 한국연극배우협회 사무총장에 따르면 전주는 풍선 등을 활용해 숨과 발성을 익히는 '호흡', 사천은 천과 신체로 우주·바다·숲을 표현하는 '몸과 움직임', 구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랩과 대사로 바꾸는 '말과 서사'를 가져왔다. 세 지역의 숨·몸·말이 캠프 현장에서 섞였고, 아이들이 놀며 만든 장면들이 하나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신바람 사무총장은 "아이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꺼내 타인에게 건네는 것, 그게 연극예술이 줄 수 있는 큰 가치"라며 "전날 하루 동안 놀았던 것이 모두 공연의 장면이 됐다. 잘하고 못하는 속도보다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같이 완성하는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만석 총감독 역시 공연의 완성도보다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어떤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아이들이 여러 놀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 목표를 뒀다"며 이번 캠프를 "과정 중심"이라고 정의했다.
조 편성부터 거점과 연령을 섞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알아가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찾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해진 대본 없이 당일 워크숍에서 나온 말과 움직임을 반즉흥적으로 엮었기에 다소 거칠고 미완성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 총감독은 "그게 이번 캠프의 매력"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PLAY(연극)로 놀자'라는 주제처럼 놀이가 연극이 되고 연극도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 그게 연극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도하는 동안 오만석 총감독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리허설에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커튼콜에 다같이 부를 YB(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를 불렀고,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 함께 몸을 흔들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입하는 감독보다 "우리와 같이 즐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의 말이 연습 과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들은 대본이 없는 무대에서 저마다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구리에서 온 초등학교 5학년 조하란양은 친구들과 역할을 정하고 실제 상황처럼 연기하는 일이 재미있다면서도 공연을 앞두고는 "너무 떨린다"며 웃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극단 활동이 밀양에서 다른 지역 또래를 만나는 경험으로 넓어졌다.
무대 가운데서 날아갈 듯 뛰며 장면을 이끈 전주의 초등학교 5학년 강리아 양은 기존 공연과 이번 무대의 차이로 '자유'를 꼽았다. 박 양은 "예전에는 틀에 맞춰 대사를 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배우를 꿈꾸는 전주의 여고생 홍진주 양은 단 하루 만에 수십 명이 함께 공연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걱정했다. 적은 인원의 공연도 수개월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양은 "다르게 생각해보니 정말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단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드는 그는 어린 단원들이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문삼화 꿈의 극단 구리 예술감독은 이런 과정이 아이들에게 인내와 공동체 감각을 가르친다고 봤다. 그는 "교육을 받는 것과 공연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며 "원하는 역할을 맡지 못하더라도 참고, 서로 부딪치고 도우며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합동캠프용 작품을 따로 연습시키지 않고, 평소 해오던 호흡·움직임·랩을 현장에서 섞은 오 총감독의 선택도 높게 평가했다.
공연은 '어색한 만남', '괴물', '회복', '커튼콜'의 네 장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아이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지던 중 한 친구가 풍선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자연스럽게 풍선 놀이가 펼쳐졌다. 그러다 갑자기 문제의 풍선이 등장했고, 이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풍선을 차지하려는 아이들의 눈빛과 몸짓도 달라졌다. 마치 좀비처럼 변한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가 밉고 모든 게 다 싫어요"라고 외치며 마음속 미움과 욕심으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했다.
세 번째 장 '회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아이들은 먼저 욕심을 상징하는 풍선을 무대 밖으로 밀어냈다. 이어 이번 캠프에서 직접 제작한 나비옷을 걸치고 각자의 마음속 목소리를 노래와 랩으로 풀어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할 수 있다"고 외치며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돌아왔다. 밀양 지역 설화인 '무봉사와 태극나비의 전설'은 이 네 장을 잇는 성장의 모티브가 됐다.
공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객석을 움직인 것은 아이들이 뿜어내는 웃음과 에너지였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작품에서 느끼기 어려운 생동감에 관객들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커튼콜에서는 다 같이 '나는 나비'를 부르며 날개를 펼치자 객석을 채운 박수가 한층 커졌다. 65명의 아이가 모두 주인공이 돼 관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본 없이 시작한 1박 2일의 놀이는 그렇게 지금의 아이들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창작공연으로 완성됐다.
오만석 총감독은 아이들이 2박 3일을 돌아보며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봤다. 그는 "아이들이 연극을 특별하거나 멀리 있는 예술이 아니라 친구와 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상 가까이에 있는 예술로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의 진정한 성과는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었다.
신바람 사무총장은 "거점별 예술감독의 지지와 응원 속에서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의미 있는 변화였다"고 말했다. 특히 완성도보다 과정을 중시했던 만큼 아이들은 정해진 틀과 평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신 사무총장은 "완성도와 성취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회에서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이 필요하다"며 "자유롭게 노는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예술가를 만난 것 자체가 이번 캠프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문삼화 예술감독은 연극을 아이들의 고립을 막고 공동체 감각을 회복하게 하는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라고 표현했다. 게임과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음식 주문과 쇼핑까지 방 안에서 해결할 수 있고,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는 시대일수록 다른 사람과 직접 만나 부딪치고 협력하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꿈의 예술단만큼은 단기적인 결과나 성과 지표에 매달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꿈의 페스티벌'은 취약계층 등 다양한 배경의 아동·청소년이 참여하는 문화예술교육 대표 사업 '꿈의 예술단(꿈의 오케스트라·꿈의 무용단·꿈의 극단)'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함께 성장하는 전국 규모의 합동 캠프다.
올해는 꿈의 예술단 사업 확대에 따라 장르별 특성에 맞춰 이원화해 꿈의 오케스트라와 꿈의 무용단은 지난 5~7일 강원도 평창에서, 꿈의 극단은 지난 1~14일까지 경남 밀양에서 진행됐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