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회사가 스스로 만들어 사내 공유 폴더에 올려둔 징계규정이 정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채 이뤄진 해고는 징계사유가 실제로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지난 6월 18일 엔지니어링 서비스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상시 근로자 20여명인 A사는 연구개발팀 직원 B·C·D씨가 회사 자산과 기술을 이용해 허가 없이 동종업계 사업을 벌였다며 배임, 횡령,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누설) 등을 들어 이들을 징계해고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24년 11월 이들의 구제신청을 기각했으나, 중노위는 지난해 4월 판정을 뒤집었다. 징계위원 4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회의에는 3명만 나왔고, 규정에 정해진 무기명 비밀투표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A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20년 11월 징계규정이 정한 징계위원회 구성을 위배해 징계처분을 했다면 "징계사유가 인정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법리를 그대로 끌어왔다.
A사 징계관리규정상 회의정족수는 4명 이상이지만 인사위원회에는 3명만 참석했다. 회사 측은 불참 위원까지 전원이 다음날 모여 녹취록을 들은 뒤 의결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징계위원회는 문답 등을 통하여 징계혐의자들에게 소명 기회를 부여하는 절차"라며 "다음날 모여 녹취록을 청취하였다는 것만으로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었다거나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불참 위원을 대신해 변호사가 참석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규정에 위임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며 "제3자에게 참석 권한을 위임할 경우 위원 자격으로 '이사 대우 이상'을 정한 취지가 몰각된다"고 했다. 무기명 비밀투표를 건너뛴 데 대해서도 "위원들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약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위원들의 결정이 달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A사는 징계관리규정이 정식으로 공지·등록된 적이 없는데 취업규칙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다퉜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은 명칭을 불문한다는 2022년 9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해당 규정이 사내 '전사공유' 폴더에 게시돼 있었고 2024년 1월 1일 시행이 명시된 이상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징계관리규정만 PDF가 아닌 한글 파일로 공유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공식적으로 공지되거나 등록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이 사건 해고를 무효로 보는 이상, 해고사유의 존재 여부 및 양정의 적정 여부에 관하여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