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지키던 제주 동자석, 화폭에 다시 섰다… 김수범 작가 '동자상의 노래'
25일~9월20일 민속자연사박물관 전시
동자상 오브제와 회화 결합해 애도 형상화
제주4·3 등 역사의 상흔·이름 없는 생명 조명
1980년대 보롬코지 활동 작가의 역사적 시선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무덤 곁에서 망자의 영혼을 지키고 위로하던 제주 동자석이 회화 속으로 들어왔다. 제주 현실과 역사적 상처를 꾸준히 기록해온 김수범 작가가 동자상을 통해 희생된 영혼과 이름 없이 사라진 생명을 애도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24일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김수범 개인전 '동자상의 노래'가 25일부터 9월20일까지 박물관 갤러리 벵디왓에서 열린다.
제주 동자석은 어린아이 모습을 한 석상으로 무덤 앞에 세워 망자를 지키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 동자석을 제주 화산암으로 만든 독특한 장묘문화의 한 형태로 설명한다. 손에는 숟가락이나 부채, 꽃 등 망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수범 작가는 매장문화가 달라지면서 본래 무덤을 지키던 동자석이 정원 장식이나 관광상품으로 소비되고 그 의미가 희미해지는 현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전시에서는 종이 부조 방식으로 만든 동자상 오브제를 회화와 결합했다. 화면 앞에 세운 동자상은 그림 속 역사와 죽음을 바라보기도 하고, 희생된 이들을 지키는 존재처럼 자리한다.
작가의 시선은 제주가 겪은 역사로도 이어진다. 1901년 제주에서 발생한 신축교안과 제주4·3 등 섬에 남은 상흔을 배경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무덤가의 잡초처럼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생명까지 애도의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작품 '조상'에서는 여러 인물의 얼굴 아래 두 동자상이 나란히 서 있고, '망각의 기억(달개비)'에서는 거대한 꽃 아래 동자상이 배치된다. 화려한 색채의 다른 작품에서도 두 동자상은 화면 아래에서 인물과 생명을 바라보며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김 작가는 1980년대부터 제주 현실을 미술로 기록해온 작가다. 특히 제주 민중미술운동을 이끈 그림패 '보롬코지'에서 박경훈·문행섭·부양식 등과 함께 활동하며 제주4·3을 미술의 언어로 드러내는 작업에 참여했다.
1989년 보롬코지가 주도한 초기 4·3 미술운동에도 참여했다. 당시 제주4·3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시기였고, 미술인들은 작품과 전시를 통해 희생자의 기억과 제주 현대사의 상처를 끌어냈다.
이후 김 작가는 판화 작업 '기억 채집', 강원도 탄광촌의 삶을 다룬 '사북 아라리', 전시장과 미술 현장을 기록한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매체로 사회와 역사를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런 역사적 시선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모든 생명의 존엄으로 넓어진 작업이다. 동자상은 과거 무덤을 지키던 석상에서 그림 속 희생자와 작은 생명의 곁을 지키는 존재로 다시 배치된다.
부용식 민속자연사박물관 연구과장은 "제주의 전통 석상인 동자상을 통해 역사의 상흔을 돌아보고 우리 곁 모든 존재가 가진 고귀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