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개성 박연폭포입네다, 꿈이 아닙네다!
파이낸셜뉴스
2005.07.20 13:30
수정 : 2014.11.07 16:18기사원문
지난 98년 금강산 관광이 열린데 이어 현대아산의 대북 관광사업이 백두산을 비롯, 개성과 내금강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자긍심과 숨결이 담긴 곳으로, 내금강은 금강산내 ‘알짜배기’ 명소로 북한이 가장 자랑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현대 아산은 다음달 20일까지 각각 사전답사를 통해 관광 인프라를 점검, 이르면 8월말부터 시범 관광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500년 도읍지로 고려인의 유구한 정기가 스며 있는 개성의 주요 명소와 화려한 계곡미를 자랑하는 내금강의 모습을 미리가서 접해본다.
박연폭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개성시내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눈에 잡히는 것이 고려의 옛 궁터인 만월대다.
919년(태조 2년) 개성이 도읍으로 정해지고 1361년(공민왕 10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될 때까지 무려 500여년간 고려 왕조의 주 거처 역할을 했다. 기존의 궁터가 평원에 지어졌던 것과는 달리 만월대는 송악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용호지세의 형상으로 개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만월대 안에는 승평문, 광화문 등이 주요 도로로 각기 이어졌고 만월교, 춘덕문, 회경전 등이 고려 특유의 기풍을 안은 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계단, 기단지, 초석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개성 시내쪽으로 더 내려오면 선죽동 자남산 기슭에 선죽교가 자리잡고 있다. 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 일환으로 건립된 고려시대 돌다리 건축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죽교가 유명해진 것은 고려 충신 정몽주가 조선개국 공신들에 의해 피살된 곳이기 때문. 당초 이 다리의 이름은 선지교. 당시 정몽주가 흘린 피가 다리 밑으로 흐르면서 그 자리에 대나무가 자라 올랐다 하여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 개울 바닥에 기초석을 깔고 그 위에 기둥석을 받쳐 화강석 판돌을 올려놓은 단순한 구조지만 800년간 무너진 왕조의 애환을 담아놓은 유서깊은 명소다.
◇금강산 내금강=내금강은 금강산의 서부자락에 위치한 북한 최대 명산이다. 북한이 폐쇄정책을 내세우기 전만해도 내금강의 자연은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갖추던 곳.
지난 98년 현대 아산이 금강산 관광을 발표할 당시 북한측 군사시설을 이유로 내금강을 제외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올해부터 분단 반세기만에 극적인 내금강 관광이 이뤄질 예정이다.
동부자락 외금강과 접해있는 내금강은 수려한 계곡미가 단연 으뜸이다. 옥녀봉(1424m)을 비롯해 비로봉·월출봉(1580m) 차일봉(1529m) 호룡봉(1403m) 등 1000m 이상의 높은 바위들이 내금강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특히 이같은 암석외에도 잣나무, 전나무 등 화려한 수림들이 울창히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절경을 표출한다.
내금강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곳은 만폭동 코스. 내강리를 시작해 장안사터를 거쳐 표훈사, 정양사터, 만폭동, 보덕암, 마하연, 묘길상을 도는 루트. 특히 내금강 입구에 자리잡은 장안사는 신라때 창건한 사찰로, 노송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이 일품이다.
또 만폭동을 지나면 만나는 백운대 역시 웅장한 경치를 자랑한다. 이 곳에서는 혈망봉, 법기봉 등 만폭동의 모든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백운대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하면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이 기다린다. 기암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비로봉 정상은 평탄한 고원지대로, 다양한 나무들이 세찬 풍파를 이겨내고 꿋꿋이 서 있다. 저온과 강한 바람에 의해 대부분의 나무는 옆으로 자라난 것이 눈길을 끈다. 비로봉에 오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해돋이와 노을 전경. 계절, 시간, 날씨에 따라 비로봉에서의 전경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이밖에 구성동 골짜기의 가막소와 조양폭포, 명경대 구역의 옥경대, 황천담, 수렴폭포도 우아하고 섬세한 볼거리로 내금강의 절경을 뒷받침하고 있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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