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를 움직이는 인맥들-(상)‘증권사관학교’ 대우증권
파이낸셜뉴스
2006.08.28 19:49
수정 : 2014.11.06 00:23기사원문
#2005년 9월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 대우증권이 창립 3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홈커밍 데이’에 600여명의 전·현직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이 참석했다. 증권가를 주름잡는 막강 파워맨들부터 전국 각계로 뻗어나간 최고경영자(CEO)들까지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위압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손복조 대우증권 사장의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 자리에 이끌었을까. ‘대우’출신이라는 자부심과 끈끈한 정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이러한 현실에 유독 대우증권 출신이라면 “얼굴도 안보고 뽑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접받은 이유는 뭘까. 인재 사관학교로 통할 만큼 직원 교육이 엄격하고 혹독하다는 게 회사 안팎의 시선이다. 특히 그룹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제2의 성공신화를 창조한 위기 대처능력도 한몫하고 있다.
이를 말해주 듯 증권사의 CEO가 대거 포진해 있고 다른 분야 CEO로 전업해 ‘한자리’ 하는 사람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CEO 다수 배출한 ‘증권 사관학교’
대우출신 CEO의 활동이 돋보이는 무대는 단연 증권가다. 오죽했으면 대우증권을 일컬어 증권 사관학교라고 부를 정도다.
현직 CEO 중 대표적인 인물은 손복조 현 대표와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대표.
손사장은 84년 입사 후 기획실장 등 핵심부서 임원을 두루 거친 인물. 2000년 리서치 센터장을 끝으로 잠시 친정을 떠난 뒤 5년 만인 지난 2004년 CEO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취임 바로 다음날 부지점장급 이상 직원들을 모아놓고 한 가지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1등 자리를 다시 찾아옵시다.”
당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였지만 갑자기 ‘넘버(NO) 1’을 주문하고 나선 손사장을 두고 고개를 흔들었던 직원도 적지 않았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대우 증권맨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지난해 3월 연간 누적 점유율에서도 1등을 하는 성과를 냈다.
현직 CEO중 맏형격인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도 대우증권 출신이다.
지난 98년 대우증권과 인연을 맺은 박사장은 자금담당 상무 등을 거친 뒤 2000년 대우증권 사장에 올랐고 현 손복조 사장의 취임과 함께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LG증권과 우리증권 통합작업을 이끈 인물이다.
한화증권 진수형 사장과 나효승 CJ자산운용 대표 역시 대우출신이다.
진수형 사장은 대우투자자문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산은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서울투신운용 대표를 역임한 나대표는 대우증권에서 법인, 소매영업, 자산관리 부문에서 일했다. 김기범 한불종합금융 사장도 헝가리, 런던 현지법인장을 역임했던 인물.
황건호 증권업협회장과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도 대우증권 출신 CEO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특히 황회장과 강소장은 각각 국제금융부장과 국제영업부장 시절인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대우증권 국제영업본부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들.
이 밖에도 전·현직 부사장까지 합치면 최대 40∼5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증권 손복조 사장은 “증권업계 뿐만 아니라 제조, 정보기술(IT), 투자·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면서“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위기관리 능력과 대우시절 배운 열정과 도전정신이 오늘의 자리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 리서치 센터장 알고 보니 대우출신
증권회사는 사람 장사다. 그 중에서 애널리스트라 불리는 연구인력이 핵심이다. 최근과 같이 수요가 달리는 상황에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스타 애널리스트’를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쉽지 않다.
그 스타들은 어디서 어떻게 성장했을까. 바로 ‘대우증권’.
“이종승(NH증권), 이종우(한화증권), 윤세욱(메리츠증권), 박영태(교보증권), 조익제(CJ투자증권), 이정호(미래에셋증권)….” 주요 6개 증권사의 리서치 책임자가 대우 출신이다.
‘베스트 연구원’은 말할 것도 없다. 분석에서도 뛰어나다고 하면 거의 대우증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대우증권을 두고 ‘리서치 명가’·‘리서치 사관학교’라고 부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대우경제연구소(DERI)를 찾으면 그 해답이 나온다. 대우경제연구소는 84년 대우증권이 100% 출자해 설립한 국내 첫 민간 경제연구소다. 당시 대우증권은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리서치 인력 양성에 집중 투자했다. 철저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 고급인력을 양성한 데다 이한구 소장 등 실력 있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토요세미나 등 팀워크를 통한 능력 배양에 힘을 쏟았다. 이들 대부분은 리서치센터에 배치돼 이론과 증권 현장을 연결하는 구실을 담당했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공세와 외환위기는 이후 대우증권의 위상을 흔들었고 리서치 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더러는 금융계, 학계, 정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교보증권 박영태 리서치센터장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한 모임은 잦다”면서 “대우출신의 경쟁력이라면 경제연구소에서 출발해 철저한 교육을 통해 역량을 배양하고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전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우출신 벤처업계에서도 두각
대우증권 출신들은 비단 증권업계뿐만 아니라 벤처업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벤처행을 선택한 이들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사장에서부터 중간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벤처업계의 요소요소에 포진해있다. 코스닥 상장업체인 나모텍 정준모 대표와 증권사 최초의 사내벤처인 아이메카 전석환 사장이 대표적이다.
정준모 사장은 90년대 활동했던 대우의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벤처업계의 스타 CEO로 평가받고 있는 전석환 사장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다. 전사장은 당시 입사 4년차 대리에 불과했지만 특유의 기획력과 자신감을 내세워 사내벤처인 아이메카 대표로 발탁됐다. 증권사 사내벤처라는 것도 이채롭지만 IT 불황속에서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은 임직원 24명의 알짜회사로 거듭났다.
이 밖에도 80년대 말 이후 거듭된 증시 호황으로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든 사례도 적지 않다.
/kmh@fnnews.com 김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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