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

파이낸셜뉴스       2006.11.16 16:58   수정 : 2014.11.04 19:26기사원문



※‘치열한 올챙이’시절이 만든 기하학적 추상화의 혁명

기이한 화실이 하나 있다. 실내는 검소하다. 수도승의 방 같다. 그런데 벽면이 온통 빨강, 노랑, 파랑과 회색, 흰색, 검은색의 직사각형으로 덮여 있다. 가구는 모두 흰색과 검은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전축만 빨간색이다. 심지어 화병에 꽂힌 인조 튤립은 잎사귀마저 흰색이다. 자기 작품을 3차원의 공간에 옮겨놓은 것만 같다. 이 그림 같은 공간의 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신조형주의(No-Plasticism)의 창시자인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몬드리안의 작품은 제한된 색채와 선으로 구성한 격자형의 기하학적인 추상이다. 그래서 '몬드리안' 하면 자동적으로 그 격자형의 추상화가 떠오른다.

그런데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그런 스타일로 그렸을까?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모색의 결과였다. 모든 작가가 그렇듯이 몬드리안에게도 방황하던 '올챙이 시절'이 있었다. 평범한 화가였던 그를 서양미술사에 우뚝 세운 것은 올챙이 시절의 치열함이었다.

■몬드리안의 푸른 '올챙이 시절'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를 잉태하기까지 오랜 동안 다양한 표현양식과 지식을 수혈 받는다.

초기의 그림은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전통적인 풍경화와 정물화였다.

1907년에 한 차례 변화를 겪는다. 후기인상파와 외광파(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같은 해에, 암스테르담에서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하는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형태보다 색채를 선호하는 그들의 취향은 몬드리안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그는 새로 발견한 색채 위주의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화가 안 토로프를 만나면서 표현양식이 더 강화된다. 안 토르프는 네덜란드에서 외광파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와 교류하며 원색만을 사용한 분할묘법으로 작업하기 시작한다. 1909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대규모 단체전에 외광파 계열의 작품들을 출품한다.

1909년 5월도 특기할만하다. 몬드리안이 신지학(神智學)협회에 가입한 것이다. 이 협회는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하나의 원천에서 비롯되며 정신과 물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이 새로운 사상을 그림에 반영하는 작업을 한다.

1911년부터는 입체파 양식에 매료된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초기 입체파 작품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다음해 초, 아예 입체파의 원산지인 파리로 이주한다. 1917년까지 입체파 양식을 자기 식으로 소화한다.

그러던 1914년, 신지학자 M.H.J.스훈 마르케스를 만난다. 아버지 병문안차 네덜란드를 방문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라덴에 정착한 직후였다. "선의 상징적인 의미와 우주의 수학적인 구성"에 관한 그의 저서는 몬드리안의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이때 자연은 불쾌하고 무질서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혼란기에 절실히 요구되는 조화와 질서를 예술 속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신조형주의는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신조형주의의 지향점은 실제의 자연계에는 결여된 정확하고 기계적인 질서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재현을 거부했다. 대신 직선과 직각(수직선과 수평선), 3원색(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의 무채색(흰색, 검은색, 회색)으로 선과 색을 엄격히 제한한다. 이는 부단히 변하는 형태들 속에 감춰진 불변의 실재를 포착하려는 것이다. 그는 1920년에 '신조형주의'를 출간한다.

■천년의 고정관념을 깬 '비대칭성의 균형'

'노랑, 파랑, 빨강의 구성'(1921)은 몬드리안의 생각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표나게 보여준다. "순수한 구성요소 상호간의 순수한 관계만이 순수한 미를 낳는다"는 자신의 말처럼 수직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검정, 흰색, 회색의 무채색을 사용하여 격자형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에게 수직선은 생기를, 수평선은 평온을 의미한다. 몬드리안은 이 두 선이 적절한 위치에서 교차하면 역동적인 평온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비대칭성의 균형과 조화다. 이전의 화가들은 균형이란 항상 중심축을 중심으로 서로 대칭으로 배치될 때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즉 대칭은 하나의 계층적 질서로서, 복종과 지배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몬드리안은 이런 관계를 자유롭게 하는 데서 조화를 찾았다.

이 비대칭의 균형은 1000년 동안 군림해온 대칭 개념의 치하에서 독립을 의미했다. 이는 회화뿐만 아니라 1920년대 건축과 인쇄, 응용미술 전반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몬드리안은 올챙이 시절에 경험한 다양한 표현양식을 바탕으로 신조형주의를 낳았다. 그것도 주관적인 감정 표현을 억제하며, 자연의 형태를 점차 단순화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화실을 자기 작품처럼 꾸밀 정도로, 평생 금욕적인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추구했다.

■키포인트

누구에게나 '올챙이 시절'이 있다.
올챙이 시절 끝에 '개구리 시절'이 열린다. 한번 올챙이는 영원한 올챙이가 아니다. 올챙이 시절의 매운 경험은 미래의 성장 동력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풍요로운 개구리 시절을 준비하자.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몬드리안, '노랑, 파랑, 빨강의 구성', 캔버스에 유채, 90×50㎝, 1921, 헤이그시립미술관 소장.(위쪽 작품)

몬드리안, '붉은 나무', 캔버스에 유채, 70×99㎝, 1908-10, 헤이그시립미술관 소장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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