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털털한 엄기영 앵커

파이낸셜뉴스       2007.01.09 18:07   수정 : 2014.11.13 18:19기사원문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앵커 엄기영씨(56)가 신문기자들 앞에 섰다. 9시 뉴스 보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신문 보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다.

한국인은 그의 목소리에 울고 웃고 한다. 방송 3사를 통틀어 현재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떠올리라고 하면 엄기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난 77년 출장 중 비행기 사고로 병상에서 6개월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은 이미 한번 죽었다고 말하는 엄기영 앵커. 그는 그렇게 모질게도 팔자가 세서 지난 10여년 세월 동안 국내 최고의 앵커 자리를 무사히 꿰찼는지도 모른다.

엄 앵커는 프랑스 특파원 시절에 접한 코냑 때문에 와인류의 술을 좋아한다. 또 패션감각이 뛰어난 집사람에게 자신의 의상과 넥타이 선택권을 모두 맡긴다는 애처가다.

최근 ‘불량언론’이라는 정치권의 폭탄선언으로 시끄러운 시기에 신문·인터넷 기자 앞에서 선 엄기영에게 다소 까칠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진솔한 답변을 들어봤다.

―앵커 생활이 굉장히 길었다. 얼마나 했나.

▲7년 동안 하다가 잠시 쉬었고 다시 시작한 지 6년이 됐다.

―앵커 말고 이사라는 직함이 있다. 그 역할은 무엇인가.

▲5시 반에 일어나 일이 시작돼 9시 뉴스로 끝난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 또 이사라고 해서 특별이 해야 할 정책 결정은 없다.

―올해 대선방송도 맡나.

▲이번 대선은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1년 동안 일어날 변화무쌍한 것들을 같이 지켜보면 상당히 행운일 것 같다.

―지난 지방선거 때 출마 권유가 많았다.

▲일단 대통령 출마는 안한다.(웃음)

―그동안 대선 방송을 몇 번이나 진행했나.

▲전두환씨 이후 계속했다. 앵커 자리에서만 4번했다. 제일 흥미로운 때는 DJ때였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는 정치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DJ때는 정치부장으로서 대선방송에 모든 책임을 다졌다. 그때 이득렬 사장이 여론조사까지 해놓고서 대통령의 당선 발표를 안 하는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대선 방송은 (한마디로) 똥줄이 타는 일이다.

―정치권 영입 0순위라던데.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선택의 문제다. 개인적으론 정치 쪽은 조금 아닌 것 같다. 정치쪽에 가면 잃어버릴 것이 많다. 지금하는 일이 더 좋다. (이를 표현하자면) “아이 러브 잇(I love it·사랑한다)”이다. 이곳(방송사)에서 선종했으면 한다. 떠나라면 떠나야 하겠지만, 그대로 남고 싶다.

―언제까지 앵커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나.

▲시청자들이 쟤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할 때까지? 이젠 안 되겠구나 하면 여러 사인이 나올 것이다. 그때는 진짜 물러난다.(웃음)

―줄기세포 사건 보도 때 어땠나.

▲줄기세포는 MBC로선 생각하기 싫다. 편집부에선 줄기의 ‘줄’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올 정도다. 그래도 어려운 진실을 캐냈다고 생각한다.

―뉴스 시청률을 의식하나.

▲시청률이 오르면 물론 좋다.

―타 방송사 뉴스도 모니터 하나.

▲할 시간이 없다. 대신 편집부에서 해준다. 상대 방송사의 뉴스를 (스튜디오) 모니터를 통해 보는 정도다.

―평소 넥타이는 누가 고르나.

▲마누라가 해준다. (이날 함께 자리한 박혜진 아나운서는 엄이사가 특별한 코디가 따로 없고 부인의 의상 선택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김성주 아나운서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어떤가.

▲김성주씨가 개그와 코미디를 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애초부터 뭔가 주어진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떨 땐 우리도 연기수업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웃음)

(박혜진 앵커는 “밝은 뉴스는 누구나 쉽게 한다. 하지만 어려운 뉴스는 표정을 관리해야 한다. 좋은 의미로 엄 이사님은 노련하다”며 엄 앵커를 평가했다.)

―그래도 아나운서들이 너무 튄다고 하는 중장년층도 있는데.

▲조금씩 달라지는 것 아닌가. 시청자들이 거부하면 곤란하겠지만 간격을 아주 잘 개척해 나가면 긍정적으로 본다. 품격을 아주 파괴하면 곤란하겠지만. (다른 이야기지만) 기자들의 경우도 가장 개혁적이지만 사실 보수적이고 가장 잘 안 바꾸려고 한다. 길들여지다 보니 편해져 가는 것 같다.

―요즘 뉴스는 어떻게 변하나.

▲2580처럼 13분짜리 긴 프로그램들을 조금씩 줄여서 5∼6분 정도로 줄여서 심층 보도하는 것이 반응이 더 좋다. 보도가 나가는 사이에 시청률의 그래프가 올라가는 것도 봤다. 하지만 1분10초 뉴스에 익숙하다가 5분짜리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도할 때 가장 즐거운 뉴스는 뭔가.

▲축구중계? (엄앵커는 옆 자리에 앉은 박혜진 아나운서에게 되묻는 듯이 답변했다.) 보통 뉴스는 정치권 싸움, 노사분규 등 어두운 것들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다.

―한국 언론 vs 해외 언론.

▲미국의 경우는 앵커에 많이 따라 간다. 영웅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연봉을 천만에서 천오백만 달러씩 주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 방송 포멧으로 만들어 졌지만 앵커를 영웅으로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우리 방송이 미국 방송에 크게 질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아마도 앵커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 식으로 미국 ABC 앵커들에게 하라고 한다면 아마 못할 것이다.

또 우리 신문들도 뉴욕타임즈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유대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리스펙스(Respect·존경)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언론을 ‘불량상품’이라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엄앵커는 이 대목에서 아까부터 피우던 ‘에세 라이트’ 담배를 다시 꺼내서 입에 물기만 했다.)

―MBC뉴스가 젊은이들이게 인기가 좋은데.

▲MBC는 뉴스가 ‘리버럴(Liberal·자유로움)’을 갖췄고 젊다. 건강함을 지향한다. 반면 KBS는 다소 오소독스(Orthodox·정통파)다. 뉴스가 정치, 경제…. 이런 식으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MBC는 좀 더 기자적이다. 신선한 것을 톱으로 자주 올린다. 양사가 편집방향이 조금 다르다.

―담배는 얼마나 피우나. 술은 얼마나 마시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집에선 담배를 끊은 것으로 안다.
이거 기사에 나가면 곤란한데…. (그는 기자들의 연신 이어지는 질문공세에 다소 긴장한 듯 담배를 수차례 피웠다.) 주량은 소주 한 병. 뉴스가 끝난 뒤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사진설명=MBC 간판앵커 엄기영씨가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2층에서 신문·인터넷 기자들과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이날 만남에 나온 엄기영 앵커(오른쪽)와 박혜진 아나운서./사진=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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