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을 꿈꾼 집념의 사나이-베르너 폰 브라운

파이낸셜뉴스       2007.12.27 15:35   수정 : 2014.11.04 14:44기사원문

“나 한 사람의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걸음을 내딛으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달 착륙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은 ‘로켓 천재’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어린시절 로켓 자동차를 만들어 어른들을 놀래키고 학교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여주며 설명할 정도로 우주에 푹 빠졌다. 이후 독일 우주여행협회에 가입해 동료들과 2년 동안 80여 차례나 로켓 발사 실험을 하는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 육군 드룬베르거 대위가 브라운을 찾아왔다. 당시 독일은 폭죽 정도로 여겼던 로켓을 전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밀리에 로켓연구소를 만들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자 우주여행협회의 연구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드룬베르거는 돈과 장비를 제공할 테니 육군 로켓연구소로 옮기라고 제안했고 브라운은 1933년 연구소에 합류했다. 1942년 브라운이 만든 길이 14m, 무게 13톤의 A-4 로켓이 하늘로 솟구쳤다. 현대 로켓의 ‘원조’로 평가받는 A-4는 ‘V-2’라는 이름의 미사일로 개량됐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3000개가 발사되며 ‘공포의 무기’가 됐다.

독일이 항복하자 브라운은 연구하던 우주여행 자료와 연구진을 이끌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미국에 귀화해 인공위성을 쏟아 올리는 ‘오비터 계획’을 미국 정부에 제안했지만 미국 정부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구를 계속한 브라운은 1956년 ‘주피터-C’ 로켓에 모래를 채운 인공위성 모형을 실어 하늘로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고 이 실험을 근거로 국방장관을 설득했다. 그리고 1958년 1월 31일 주피터-C에 보조로켓을 단 4단계 발사용 ‘주노-1호’는 꼭대기에 무게 14kg에 직경 15cm짜리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싣고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브라운은 196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감독이 돼 초대형 새턴 로켓을 개발했다. 이 로켓이 아폴로 11호에 암스트롱을 태워 달로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1972년 NASA에서 은퇴한 그는 5년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주시대를 열고 인류에게 새 세상을 보여준 ‘로켓의 아버지’ 브라운. 물론 그가 이룬 업적은 대단했지만 한편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20세기의 파우스트’로도 불린다. 그가 개발한 탄도 미사일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는, 우주는 어떻게 변했을까.

(글: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자료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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