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국가R&D전략기획단장 “전세계 선도 ‘온리원’ 제품 만들어야”
파이낸셜뉴스
2010.06.23 05:35
수정 : 2010.06.22 22:27기사원문
“국가를 위해 일하게 된 것도 운명이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장(사진)이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국가최고기술경영자(CTO)로 불리며 R&D를 총괄하는 공직자로 변신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제압해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삼성에 입사했을 때도 운명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R&D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게 될 그의 선택 역시 운명적이라는 말이다.
중책을 맡은 지 석 달여. 그는 새로운 성장동력, 미래성장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 기간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계적 석학들에게 고견을 청했고, 촌각을 다투며 변화와 진보를 거듭하는 글로벌 시장의 메인 스트림을 간파했다.
5대 강국 도약을 위해 인재와 기술, 전략을 국가차원의 큰 틀에서 기획·조율하고 집중화하는 것이 자신과 전략기획단의 역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 단장은 “이제는 세계 5대 기술강국이 되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파이낸셜뉴스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18일 서울 역삼동 R&D전략기획단 사무실에서 황 단장을 만나 국가 R&D전략 수장으로서의 각오와 청사진을 들어봤다.
<대담 : 김용민 정치경제부장>
―우리나라 R&D전략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과 일본, 중국은 우리의 경쟁자이자 벤치마킹 대상이다. 중국은 기초기술에서, 일본은 장인정신을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응용기술이 강점이다. 기존 것을 계승·계량해서 융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상대적으로 기초기술이 약하거나 창의성이 부족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인재 수는 떨어질지 몰라도 ‘질’로 보면 우수한 인재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기회와 위기 요소가 공존하고 있는데 기회요소가 더 있다고 본다. 짧은 시간 동안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 정보통신(IT), 조선, 자동차, 원자력, 반도체, 휴대폰 등 우리가 잘하는 것을 근간으로 마켓셰어를 늘려왔다. 하지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확실한 기술혁명이 필요하다. 인재, 기술, 전략 모두 그렇다. 누군가 기획하고 집중화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융복합화의 초기단계다.
―복잡한 R&D체계와 과잉·중복투자가 문제인데.
▲그렇다. R&D 체계가 다소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 시스템을 보고 각각 잘 유기적으로 연관되도록 만들겠다. 이것이 정말 필요하다. 기업들은 메가 트렌드다 싶으면 다 몰리게 돼 있는데 R&D 결과는 뻔하다. 전세계를 리드할 기술개발은 어렵고 힘만 들 뿐이다. 하루빨리 R&D의 중복성을 배제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처럼 단순히 메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 효과적인 R&D 방안은.
▲우선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해 우리가 못하는 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도입해 보완하겠다. 인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 해외자문단을 구상하고 있다. R&D 분야에 경쟁논리가 도입되면 달라질 것이다. 경쟁논리를 도입하고 평가할 때 국내 최고 전문가뿐 아니라 해외자문단을 총망라해 활용하겠다. 어떤 형태든 좋은 결과를 이용할 수도 있고 인재도 쓸 수 있다.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단계별로 논리를 적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R&D는 결국 민·관·학의 공조가 관건인데 협조는 문제없나.
▲우선 민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빠쁘다. 그래서 민간기업은 미래 기술개발은커녕 따라가기도 급하다. 협조를 유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도체 관련기업들이 상생해서 성장하는 것은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대·중·소기업 육성전략이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이제까지 학교는 학교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따로 놀았다. 협력하라고는 했지만 중심 매개가 없었는데 전략기획단이 이런 부분을 잘 조율해서 사업화하는데, 먹을거리를 찾도록 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석 달 남짓 일했는데 관료조직과의 협조도 잘될 것으로 본다. 관료들은 이제껏 해오던 업무에 한계를 느꼈고, 스스로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조직을 만든 것이다. 전략기획단이 관료조직의 요구를 잘 수렴해서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해결하는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어려울 것도 없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기업들이 따라줄 것으로 보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든 미래의 변환점, 변곡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결국 메가 트렌드를 따라간다는 말이다. 전략기획단은 대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앞서서 만들고, 해외 자문단을 도입하고, 국내 전문가를 집중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국가가 나서서 리스크를 제어하고 대기업의 메가 트렌드 투자를 독려하며 미래의 변곡점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개성이 강하고, 동기부여가 강하다보니 전부 달려들어 하겠다는 의욕도 강하다. 미래 먹을거리를 찾는 활동에 대기업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중견기업이 부족한데 이들이 잘 자리잡도록 환경 조성에도 힘쓸 것이다. 집중화하면 중견기업이 육성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정부가 R&D부문을 민간에 넘긴 배경은.
▲2000년에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1등하던 제품이 87개였는데 2007년에는 53개로 줄었다. 1등 품목 국가 순위도 13위에서 19위로 떨어졌다. 과거에는 상당히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보면 지수에 떨어지는 품목들이 눈에 보인다. 먹을거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R&D에 경쟁논리는 없었다. 나눠먹기식이었다. 때문에 이 같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을 것으로 본다. 민간기업처럼 투자했으면 반드시 성과를 내는 민간기업의 논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오랜 고민 끝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결단을 내려 그 기능을 전략기획단에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략기획단 운영은 숙제다. 잘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잘 기획해서 서로 다른 기능을 유기적으로 묶어주고 해서 얽힌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갈 생각이다.
―MD 선정했는데 업무분장은.
▲산업 5개분야의 투자관리자를 선정했다. 이들이 과제 발굴부터 평가하고 계획하고 예산을 결정하는 일련의 업무를 맡게 된다. 전체의 최적화를 위한 플랜, 국가 최적화를 위한 플랜을 통해 구조적인 시스템을 갖추면 수십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MD들이 맡은 부분들은 초기부터 융복합화할 산업들이고 대부분 주력산업이다. 자기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히 맡길 것이다. 초기단계부터 역할분담을 할 것이다. 저는 오픈 마인드로 조정역을 할 예정이다.
―우수 인재 채용에 어려움이 많다. 해법은.
▲젊은 연구원들은 대우도 중요하지만 서울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연구원들이 자신이 유익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경우 비록 지리적으로 서울에서 떨어져 있지만 출연연구소, 기업연구소, 기업이 모여 있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이번 기회에 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의 연구 의식을 확 바꿔볼 생각인데 이를 위해서는 돈보다도 연구환경을 구축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순수 기술개발보다는 사업성(응용기술) 있는 것에 주력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고객 없이 상품화됐던 기초원천기술도 이제는 고객과 시장을 염두에 둬야 훨씬 더 독창적인 원천성을 갖게 된다. 기초원천기술은 (지원을) 줄이고 사업성이 강한 응용기술의 비중을 늘린다 하더라도 결국 이렇게 가면 기초원천기술 역시 시장-고객지향적 기술이 되기 때문에 둘다 윈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온리원(Only one)’ 제품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는데.
▲한글, 과학기구들, 상감청자, 천자총통 등 우리민족은 역사적으로 뛰어난 것이 많다. 일례로 상감청자를 보자. 중국 송나라로부터 가져온 청자를 파서 메운 상감기법으로 탄생한 입체감은 그윽한 청자의 맛과 색깔을 낸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기술이다. 온리원 제품은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제품을 말한다. 적어도 이 제품에 대해서는 경쟁사들의 추격이나 추월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콘셉트부터가 다른 것이다. 퓨전은 새로운 콘셉트이다. 여러 산업을 초기단계에서부터 융합해보자. 가령 모바일과 반도체, 의료기술을 엮은 제품은 우리만이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전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제품, 국가적으로 온리원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봐왔고, 검증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와 비전이다.
―반도체 전문가로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전망한다면.
▲최근 몇 년간 반도체는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반도체는 시장보다 기술이 향후 미래 산업을 만들고, 신산업을 융복합화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된다. 모든 산업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자 융합의 핵심기술이다. 우리는 반도체를 어렵게 발굴, 성장시켰는데 정말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반도체는 국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앞서가는, 다른 국가들이 넘보지 못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수요 사이클이 있긴 하지만 기술력이 있고 차별화된 제품을 갖고 있으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sykim@fnnews.com김시영기자·사진=박범준기자
■황창규 단장은..
황창규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은 삼성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최고경영자(CEO)다. 1978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198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 미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과 인텔 자문역 등을 역임했다.
그가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부터다. 황 단장은 메모리담당 대표이사 부사장과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 기술총괄사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삼성전자 반도체를 자타공인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
특히 삼성전자 사장 시절인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법칙'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 반도체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황창규 국가R&D전략기획단장 약력 △57세 △부산 △부산고 △서울대 전기공학과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박사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 △인텔 자문역 △삼성반도체 이사 △삼성전자 메모리담당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 사장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전자 상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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