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가는게 쉽다고?..2개월 넘게 연습해야”

파이낸셜뉴스       2011.02.10 18:23   수정 : 2014.11.07 03:27기사원문

세월 따라 직업 트렌드도 바뀌는 법. 하지만 한 우물만 파는 고수들은 어디든 있다.

40년 이상 칼만 가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전민배씨에게선 장인 정신이 물씬 풍긴다.경기장 관중석의 웃음을 책임지는 인천전자랜드 마스코트 길윤호씨는 "날 때부터 마스코트였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고려신용정보 이영화 채권추심팀장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파이낸셜뉴스 수습기자 3인이 설연휴 이들을 동행했다. 직업 고수 3인들의 일상과 꿈을 깊숙이 파헤쳐봤다.<편집자주>

노량진 수산시장의 전만배씨(55)는 칼갈이 고수로 통한다. 하루 300자루의 칼을 갈고 또 직접 칼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그 수익만 해도 하루에 100만∼200만원꼴. 여기에 '한칼'이라는 인터넷 '칼 쇼핑몰'까지 운영하며 부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년에 3억원을 넘는 수익을 내는 셈이다.

1일 새벽 3시30분. 전씨가 운영하는 한밭대장간 본점을 찾았다. 전씨는 새벽 3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칼을 간다. 이른 시간임에도 시장은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움직임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사장이 다가왔다.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그는 검은 피부에 건장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전씨가 칼을 갈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 대장간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다. 그의 칼 가는 솜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불과 2년 만에 아버지의 실력을 뛰어넘어 입소문을 타게 돼 모든 손님의 칼을 도맡아 갈게 되었다. 그렇게 칼을 갈아온 세월이 올해로 40년째다.

그의 열정은 단순히 칼을 가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전국일주를 하기도 하고 일본, 독일 등 대표적인 칼 생산국 제품들에 대한 분석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씨의 노력 때문인지 전국 각지에서 그의 명성을 듣고 칼을 갈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이날 역시 새벽 5시 대구에서 사시미칼 5자루를 들고 한 남성이 찾아왔다. 일식집의 요리사로 일하는 김모(34)씨. 그는 "전 사장을 찾아온 건 이번이 세 번째" 라며 "사시미 칼을 다듬는 작업은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이 분야 고수인 전 사장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칼을 가는 작업 중에서도 사시미칼을 다듬는 작업은 특히 고급 기술이다. 다른 칼에 비해 작업비용도 비싸다. 일식 요리사들은 사시미칼을 자신의 요리 스타일에 맞게 깎아서 쓰는데 매우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웬만한 칼갈이 고수가 아니고서는 쉽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시미칼은 '간다'는 표현보다는 '제작한다'는 표현을 쓴다. 일식집 요리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사시미칼을 싸들고 일부러 칼갈이 고수를 찾아오는 까닭이다.

전씨의 칼 가는 작업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초벌연마다. 칼의 형태를 잡고 날의 모양, 두께, 각도 등을 잡는 작업이다. 초벌연마를 마친 거칠어진 칼날은 중벌연마를 통해 곱게 다듬어지게 된다. 이어 재벌연마와 마무리연마를 통해 칼에 달려 있는 미세한 가루들을 걸러내게 되면 칼갈이 작업이 끝이 난다. 이 중 초벌연마와 중벌연마는 전씨가 직접 계량한 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기존에 구입한 칼갈이 기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홧김에 해머로 때려 부순 후 나만의 연마기로 다시 개조했다"며 기계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칼 가는 일이 단순 노동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팔 힘과 정교한 손놀림이 없으면 손을 다치거나 칼날을 상하게 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기자가 초벌연마 작업을 해 본 결과 엄청난 집중력과 체력을 쏟아야 했다. 힘차게 돌아가는 연마돌에 힘을 주어 칼날을 눌러야 하는데 엄청난 마찰력 때문에 연마돌에 손이 따라가기 일쑤였다. 또 칼날도 날카롭게 갈리긴커녕 울퉁불퉁하게 망가져 버렸다. 영하의 날씨에도 이마엔 땀이 송송 맺혔다. 버려진 칼로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값비싼 사시미칼을 갈기라도 했으면 그대로 변상했어야 할 판이었다. 전씨는 "최소 2개월 이상 피나는 훈련을 받아야 그나마 가장 갈기 쉬운 생선칼(시장에서 생선의 머리를 자를 때 주로 쓰는 칼)을 겨우 갈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칼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사실 전씨의 본래 직업은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다. 그의 점포에는 수백종의 칼이 빽빽이 진열돼 있다. 가격대도 1000원짜리 저렴한 과도부터 1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사시미칼까지 다양하다. 본인이 직접 생산한 제품과 일본의 미즈노, 독일의 드라이작 등 외국에서 들여온 브랜드 제품들로 이뤄져있다. 전씨가 만드는 칼은 '한칼'이라는 브랜드로 대전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대전공장엔 전씨와 35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기술공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전씨는 "요새는 일할 맛이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후계자가 없어 고심하던 전 씨에게 대학 졸업을 앞둔 작은 아들이 그의 일을 이어 받겠다고 했기 때문. 가업인 대장간 일을 4대째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작은 아들은 현재 대전에 있는 생산공장에서 대장장이로 태어나기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전씨의 칼 가는 손놀림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이가 또 있다. 현재 그의 보조로 일하고 있는 이희창(43)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는 고깃집을 운영하던 중 전씨에게 칼을 갈러 왔다가 대장간 일의 매력에 빠져 가게를 정리하고 대장장이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씨는 "생각해보면 이 직업이야말로 망할 리 없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며 "아내의 신뢰와 뒷받침이 있었기에 칼 가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실 전씨가 그동안 다른 후계자들을 키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를 자처한 사람들의 가족들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일본에서는 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장인 대접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천한 직업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토로했다.

든든한 지원군들을 얻게 된 전씨지만 그에겐 여전히 꿈이 있다. 바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서 당당히 한국 대장장이 기술의 우수함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우선 시범적으로 올해 안에 미국 샌디에이고에 '한칼 해외 1호점' 을 낼 계획" 이라며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만원어치의 재료로 수백만원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장기술이야말로 최고의 부가가치 창출기술"이라며 "향후 대장간학교를 만들어 대장공 기능인 양성에 힘쓰며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umw@fnnews.com엄민우기자

■사진설명=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칼갈이 고수'로 통하는 전만배씨가 일식집에서 사용할 칼을 갈고 있다. 전씨는 새벽 3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300자루의 칼을 갈고, 제작한 칼을 팔아 하루 100만∼2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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