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士·師)’자 엘리트의 추락

파이낸셜뉴스       2011.04.27 17:24   수정 : 2014.11.06 20:18기사원문

'사'자 출신 엘리트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이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생활 빈곤, 취업 불안, 영업 압박' 등의 '삼중고'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다. 연 수입이 수억원대에 달하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해 상당수는 생활고를 겪을 정도다.

2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변호사와 변리사 1인당 월평균 수입은 1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개인변호사의 경우 사무소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순수입은 월 500만원 이하인 경우도 적지 않다.

고액 연봉자로 알려진 의사들도 주판알을 튀겨보면 실속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개원에 드는 비용은 평균 3억7000만원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박사는 "여기에 연간 의원 운영비가 평균 3억원가량이며 공동개원 기준으로 보험, 소득세, 직원월급 등 기타비용을 빼면 수입은 크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고소득 전문직도 '생활고'

서울 서초동의 중소 로펌에서 근무 중인 7년차 변호사 고명현씨(40·가명)는 수억원대의 빚더미에 앉은 선후배들을 여럿 봤다. 고씨와 연수생 동기였던 B씨는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면서 2억원의 빚을 졌다. 이른 시일 내에 빚을 갚을 것이라던 B씨의 계산은 빗나갔다. 매달 사건 수임은 2∼3건에 불과했고 B씨가 벌어들이는 돈은 임대료를 제외하고 월 5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사건 수임도 개인 회생이나 파산 신청 등이 대부분이었다. B씨는 급기야 은행과 카드사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법원에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서초동의 한 중견 로펌 소속 변호사는 "변호사가 개인사무소를 차려 월 순수입 1000만원 정도를 버는 시대는 옛날이 됐다"면서 "개업한 주변 동기 중에 월 300만∼400만원가량의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는 변호사들도 더러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및 광역시 주변으로 개업의들이 몰려 출혈경쟁을 벌이다가 대출금 상환 및 직원 임금 등을 감당하지 못한 채 폐업에 이르는 곳이 갈수록 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개원 대비 폐원 비중은 2005년 65.1%에서 2010년 77.9%로 5년 새 12.8%포인트나 급증했다.

폐원이 늘고 수입은 줄다 보니 의사에 대한 금융권의 신용등급도 떨어졌다. 2009년 기준으로 의사 신용대출 상품을 살펴보면 씨티은행은 닥터론의 신용대출 한도를 5억원에서 3억5000만원으로, 신한은행은 3억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각각 낮췄다.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공인회계사 자격을 딴 이승민씨(35·가명)는 중소회계법인에 입사해 초임으로 연봉 30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이씨는 "회계사 시험 합격을 위해 쏟아 부은 비용을 감안할 때 일반 기업에 취직한 친구들과 연봉 수준이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그런데도 친구들이 회계사 직업을 높게 평가해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술값을 계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자격 취득 후 취업도 바늘구멍

조은민씨(38·가명)는 지난해 12월 그토록 갈망하던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에서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기쁨도 잠시, 조씨는 요즘 새로은 고민에 빠졌다. 수습교육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식 감정평가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간의 수습이 필요한데 통상 12월에 합격통보를 받고 수습이 시작되는 3월부터 3개월 동안 각 법인에 취직을 하고 난 뒤 그 법인에서 실무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때 감정평가법인에 취직을 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자격증을 따고도 '백수'가 될 수 있다.

마취과 전문의인 군의관 김모씨(33)는 최근 전역 후 먹고살 길이 막막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 김씨는 "마취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이라도 5명 남짓만 채용되는 경우가 많아 군의관 출신 전문의인 데도 1년 동안 응급실 당직을 뛰는 이른바 '아르바이트'를 다시 하든지, 아니면 쉬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개원이 힘든 가운데 페이닥터 자리도 인기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찾기 어렵다.

일반외과 전문의 박모씨(34)는 "가정 문제로 서울 인근에서 페이닥터 생활을 해야 한 선배가 2년 동안 페이닥터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일자리를 구했다"면서 "막상 만나보니 '빨리 취직하기 위해 초봉을 연 3000만원대로 낮춰 계약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의대 입학부터 15년가량 투자한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수준이 아니냐"라며 우려를 표했다

공인회계사들도 대형 법인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명문대 이른바 '스카이'를 졸업하고 이듬해 바로 회계사 자격증을 딴 경우여야 할 정도다. 서울 소재 K대 출신 하승진씨(33·가명)는 졸업 3년 만인 지난해 공인회계사 시험에 붙었지만 명문대 출신의 젊은 예비 회계사 위주로 회계법인 입사가 가능해 '스펙'을 더 쌓기 위해 영국으로 2년간 유학길에 올랐다.

■'권위'의자 내려와 현장영업 중시

사무실에 앉아 '오는 손님 받고 가는 손님 안 잡던' 시절도 갔다. 그나마 박봉을 감수하고 들어간 법인에서 '영업 제일주의'가 자리잡으면서 좌불안석이 된 것.

C회계법인에 근무하는 심모 상무는 명문대 출신으로 미국회계사(AICPA)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최근 회계사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 회사에서 회계사의 업무 능력을 회계감사의 질보다 회계 대상 기업을 얼마나 유치했느냐로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형 회계법인의 경우 초임이 연봉 2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신통찮다. 심 상무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회계사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는데 요즘은 박봉에다 업무에 대한 자부심마저 사라져 회계법인을 떠나 기업으로 재취업을 준비 중"이라며 "기존 전문지식 외에 영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재고해 볼 것을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심하다. 5년간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해 2009년 12월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한 신모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인 취업이 쉽지 않았다. 그는 어렵사리 서울의 중견 법인에 들어갔지만 '여성은 영업력이 약하다'는 선입견을 극복해야 하는 처지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성환 강두순 홍창기 유현희 강재웅 이병철 이유범 김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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