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나의 스승이 간다”/김성호 주필
파이낸셜뉴스
2011.10.11 16:57
수정 : 2014.11.20 13:43기사원문
위대한 스승 공자가 교만했다면 그는 이미 공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위대한 스승은 언제나 겸손하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 따르고 불선(不善)한 자를 가려 나의 잘못을 고쳐라." 공자에겐 선한 자도 스승이요 불선한 자도 스승이었다.
남의 잘못을 보고 나의 잘못을 고치는 경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로 설명한 지 꽤 오래 됐다. '믿거나 말거나'식 어원 연구에 따르면 이 말은 마오쩌둥(1893∼1976) 어록에 나온 게 처음이라고 한다. 문화혁명(1966∼1976) 당시 마오쩌둥이 말하길 조무래기 반혁명 분자는 제거하지 말고 그대로 둬 나의 잘못을 고치는 본보기로 삼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반면교사라는 말과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뜻은 다르다. 이미 공자시절부터 쓰인 이 말은 "남의 산에 있는 돌이라도 나의 옥(玉)을 가는데 쓸 수 있다"라는 뜻이다. 남은 하찮게 여기는 것이 나에겐 쓸모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두 가지 고사성어가 모두 남의 경우에서 배워 나를 바르게 하라는 뜻이지만 반면교사는 부정적인 경우를, 타산지석은 유용(有用)의 경우를 강조하고 있는 게 특색이다. 뻔히 아는 이런 말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요즘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스승이 도처에 있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는 이미 옛 스승이다. 오늘의 화두는 미국이다. 미국이 왜 오늘과 같은 곤경에 빠졌을까.
그들은 월가의 돈 잔치를 매도하고 부의 양극화를 규탄한다. 수천 수만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기업과 은행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은 수백만달러의 급여와 보너스를 즐긴다고 항의한다.
월가의 시위에는 노조와 평범한 중산층까지 가세했다.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동참할 기세다.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까지 시위대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며 금융 개혁을 역설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미국을 정면교사로 삼아 왔다.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과학 모든 것이 우리의 스승이었다. '메이드 인 U.S.A'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할리우드 배우들은 우상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미국이 연출하는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의 경우를 못 본듯이 지나칠 것인가. 한국인은 학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다. 정면교사만이 스승이 아니고 반면교사, 타산지석이 모두 스승이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공부한 김광기 교수(경북대)는 최근 저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에서 다시 한 번 미국 정신의 종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만들었던 아름다운 정신, 예컨대 정직·신뢰·관용·정의와 같은 청교도적 윤리와 성실한 자본주의, 아메리칸 드림 등은 사라졌다. 대신 정경유착, 승자독식, 비리부패, 도덕 불감증 등이 만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비판은 지난친 감은 있어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공적기관의 돈 잔치에 대해선 이미 한국인들도 '신의 직장'이란 이름으로 분노를 표시한 지 오래됐다. 한국의 공기업에선 회사는 적자지만 임원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다. 독점적 지위가 그들의 모럴 해저드의 방패가 된다. 그러가하면 '싼 예금이자 비싼 대출이자'의 틀속에 숨은 금융기관도 비슷한 경우를 즐긴다. 모두 내가 최고라는 자만에 싸여 있다. 과연 우리는 스승의 가르침을 무시할 것인가. 남의 잘못에서 배우는 겸손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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