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⑥ ‘준결정’ 신소재 등 응용 가능성 확인

파이낸셜뉴스       2011.10.16 16:53   수정 : 2011.10.16 16:53기사원문

#. 2004년 겨울,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한 연구실. 박정영 연구원은 혼자 남았다. 시간이 멎은 것처럼 막막한 밤, 피보나치 수열을 거의 완벽하게 따르는 원자들의 이미지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동자에 맺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시료를 닦고 담금질하고 들여다보며 실패를 거듭한 지 약 2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EEWS대학원 박정영 교수는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당시 '준결정'을 직접 관찰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준결정'이란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기존의 결정과 달리 원자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준주기성을 가지고 배열된 물질로, 과학계의 놀라운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박 교수는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준결정은 일반 원자 배열을 지닌 결정보다 마찰력이 낮고 전기나 열에 강하다"며 "기존 결정의 개념을 바꾸는 새로운 물질로,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산업적 신소재 개발에 폭넓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상당한 분야"라고 말했다.

준결정에서 나타나는 준주기성은 자연계 생태계의 진화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손가락 마디 길이는 '1, 3, 5, 8'의 비율을 따른다. 주변의 꽃잎 수를 세어보면 '1, 2, 3, 5, 8, 13…'과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보나치 수열은 이처럼 앞선 두 항의 합이 다음 항의 합이 되는 규칙성을 지닌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수열이다.

올해 노벨 화학상이 '준결정'을 처음 발견한 이스라엘의 셰흐트만 교수에게 돌아갈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결정에 관한 100년간의 통설을 깨고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물리, 화학, 재료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어 준결정의 응용 가능성을 파헤치는 국내 몇 안 되는 열혈 연구자다.

그는 가설로만 존재하던 마찰력과 전기적 소모 과정의 연관성을 실험적으로 입증(사이언스, 2006)했다. 올해 7월에는 건국대 박배호 교수와 함께 개념상으로만 알려졌던 그래핀의 미세한 주름구조와 생성원리, 열처리 공정을 통한 제어 가능성을 최초로 규명(사이언스, 2011)해 휘어지는 초고성능 전자소자 등에 응용 가능성을 높였다.

이어 9월에는 태양광을 흡수해 생성되는 핫전자와 표면플라즈몬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나노레터스, 2011)를 발표하며 핫전자 기반의 태양전지 개발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박 교수는 "표면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소모 또는 전환하는지가 주된 관심사"라며 "융합학문적 관점에서 새로운 물성을 밝혀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신소재, 촉매, 재생에너지 소자 개발 등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pado@fnnews.com허현아기자

■박정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1993∼1999)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학 박사후연구과정(1999∼2002),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 박사후연구원 및 책임연구원(2002∼2009)을 거쳤다. 지난 2009년 융합연구의 산실인 KAIST EEWS 대학원 부교수로 부임했다.

■사진설명=박정영 교수가 원자 규모에서 소재의 전기적·역학적 특성을 측정하는 초고진공 원자력현미경 앞에서 준결정의 원리와 응용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준결정=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고체

■핫전자=태양광을 흡수해 생성되는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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