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연연구소의 모태, 獨 연구회를 가다
파이낸셜뉴스
2013.01.21 16:51
수정 : 2013.01.21 16:51기사원문
【 자브뤼켄(독일)=박지현 기자】 한정된 자원을 과학 분야에 투입해 어떻게 최대한 성과를 낼지는 모든 나라가 가진 공통된 숙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독일은 독특한 나라다. 20여년 전 통일을 이루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유럽 제1의 경제대국 위치를 지키고 있다. 기초과학은 물론 응용과학에서 2~3년에 한 번씩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한다.
■기초과학의 선두 '막스플랑크'
막스플랑크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연구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선망하는 연구회다.
막스플랑크는 1948년 설립 후 지금까지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한해 1만5000여건에 달하는 연구 결과물을 내놓고, 독일 전체 연간 우수 논문의 40%를 차지한다. 막스플랑크는 3개 분야 80여개의 연구소를 독일 전역에 갖고 있고 해외에도 여러 개의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11년 기준 막스플랑크 연구회 소속 연구원은 2만5000여명으로 이 중 박사급만 1만3000여명이다. 외국인 비중은 40%, 연간 운영하는 예산은 약 15억유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대한 재단의 평가는 7년에 한 번뿐이고 연구분야나 연구과제는 심사 대상도 아니다. 연구소장은 그룹장들이 번갈아 맡는다. 타인의 연구에 간섭하지 않고 서로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이다.
베트람 소미에스키 박사는 "무엇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것이 막스플랑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막스플랑크는 최소 20~30년 후를 내다보는 연구를 맡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소의 특징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스플랑크는 각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의 대학들과 대부분 학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막스플랑크의 영년직 연구원 중 상당수는 '대학교수' 명함도 갖고 있다.
■응용과학 최우선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의 반대편에 프라운호퍼를 꼽을 수 있다. '프라운호퍼 선'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발명가, 사업가였던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의 이름을 딴 연구소답게 철저하게 실용적인 연구를 중시한다. 1949년 설립된 뒤 정보기술(IT), 광학, 방위산업 등 7개 그룹 아래 60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만명의 인력이 사용하는 예산은 18억5000여만 유로다. 이 예산 중 프라운호퍼 재단은 평균 30%만 부담한다. 나머지는 산업체나 지역사회 등에서 조달해야 한다.
또 프라운호퍼 연구소들은 지역 중소기업과의 공동연구에 40% 이상을 할애한다. 그 결과 독일에는 세계 시장점유율이 40%가 넘는 강소기업들이 1300여개 수준에 이른다. 막스플랑크가 논문으로 평가받는다면 프라운호퍼는 '특허'가 핵심이다.
프라운호퍼의 지향점은 이 연구소의 대표적 상품인 MP3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현재 가장 보편화된 음악압축 및 재생 방식인 MP3 압축 알고리즘은 프라운호퍼 집적회로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이 이를 상용화하면서 프라운호퍼는 떼돈을 벌었다. 2005년 한 해에만 프라운호퍼 재단이 MP3 라이선스로 벌어들인 돈은 1억유로에 달한다.
프라운호퍼 연구소장들은 종신직이 대부분이다. 지그프라이드 크라우스 부소장은 "소장이 종신직인 것은 연구소 운영에 사업성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소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철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마리 토끼 쫓는 '라이프니츠'
막스플랑크나 프라운호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라이프니츠 연구회 역시 독일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다른 연구회들이 재단본부의 판단 아래 설립과 폐쇄가 결정되는 데 반해 라이프니츠 연구회는 '가입된 기관들의 연합' 형태로 구성된다. 라이프니츠 연구회 소속 86개 기관 중에는 연구소뿐 아니라 자연사박물관 등도 포함돼 있다.
연구회의 까다로운 가입 심사평가를 통과하면 개별 연구소들은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5~7년마다 연구회의 중간평가가 실시되고, 역량이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연구회 이름을 빼앗긴다. 대신 이름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연간 14억유로의 예산을 골고루 분배받아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라이프니츠 연구회 소속 기관에는 1만6500명의 연구원이 재직하고 있으며 이 중 7700명이 박사급 이상 과학자로 알려졌다.
라이프니츠 신소재연구소(INM) 연구원인 이주석 박사는 "용액에서 파우더를 만드는 기술, 태양전지의 반사를 줄이는 코팅 기술, 자동차를 균일하게 도장하는 기술 등이 이곳 연구소에서 개발돼 상용화까지 이어졌다"면서 "연구소 옆 별도의 공간에서 축소된 크기로 전체 공정을 실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jhpar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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