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학연금 재정 악화..‘혈세투입’ 카운트다운
사학연금과 군인연금도 '재정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학연금 대상자인 사립학교 종사자들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데도 공무원과 비슷한 대우를 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국가 재정이 어려운데 공무원 신분도 아닌 사학연금 대상자까지 국가재정으로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은 애초에 연금설계 단계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군인연금은 이미 지난 2010년부터 국가보조금이 연간 1조원을 넘은 상태다. 사학연금도 수급자가 급증하면서 2033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돼 재정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연금도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일 국방부와 사학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군인연금의 경우 지난 1973년부터 국가 보조금이 투입되기 시작해 2010년부터는 보조금이 연간 1조원을 넘었다. 사학연금은 기금이 2033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학연금의 경우 지급하는 연금액을 줄이기 위해 2009년 연금산정 기준을 바꾸고 소득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정했지만 개정 제도 적용이 신규 가입자에만 한정되면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
군인연금도 지난해 7월부터 군인 기여금을 인상하고 급여산정 기준이 개선됐지만 연금 수령액과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그대로여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적연금의 개혁은 제도적 틀은 그대로 둔 채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땜질식 처방'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도 연금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지만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얼마나 실질적인 개혁안이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낮은 보험료율·공적연금 연계 문제
사학연금공단에 따르면 사학연금 보험료율의 경우 지난 2012년 14%로 인상하는 대신 연금 수급자 본인과 국가가 각각 7%씩 부담하는 갹출형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신 보고서에서 "현행 보험료율이 사학연금의 장기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현저히 미흡하다"며 "심지어 보험료율을 지금의 두 배로 인상한다 하더라도 기금 고갈 시기만 늦춰질 뿐 재정부족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순 없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사학연금공단은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한 제도개혁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며, 가입자는 물론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합의 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사학연금공단은 2022년 기금액이 23조8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듬해부터 총지출이 총수입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2033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때부터 정부 보조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연기금이 고갈되는 2033년 사학연금의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 투입될 추가재정 규모를 5조4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마저도 2080년에는 85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적연금 연계 제도도 재정 고갈을 부르는 한 원인이다. 공적연금 연계란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해 가입기간이 20년 이상 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가령 국민연금에 8년 가입하고 공무원연금에 12년 가입했을 경우 각각의 연금법에서는 연금 수급자에 해당되진 않지만 연계제도를 이용할 경우 가입기간이 20년이 되기 때문에 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사립학교 교직원 퇴직자 중 20년 미만자가 전체 퇴직자의 80% 이상인데 해당 제도가 시행되면서 20년 미만의 단기퇴직자들이 대거 연금 대상자로 포함됐다.
연계제도로 인한 재정 악화는 전체 가입자 대비 수급자의 비율을 의미하는 부양률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연계수급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2040년대 중반 이후부터 연계부양률이 급격하게 상승해 2080년에는 107.1%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계제도가 도입되기 전 2080년 부양률이 89.5%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학연금 재정적자가 얼마나 심해질지 예고하는 대목이다.
■군인연금, 연금수급 개시 연령 높여야
군인연금은 '귀족 중의 귀족'이라 불린다. 퇴역 시기가 상대적으로 빠른 탓에 일찍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1963년 만들어진 군인연금은 불과 10년여 만인 1973년부터 적자로 전환됐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연금수급자가 발생해 기금을 조성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및 월남전 등에 참전한 군인들에겐 전투종사기간을 복무기간의 3배로 가산함으로써 실질적으로 1961년부터 수급자가 발생했고, 1948년부터 1959년 임관자 약 9만6000명에 대해선 복무기간은 소급·산입하면서도 개인기여금 및 국가부담금은 면제해줬다.
더 큰 문제는 군인의 퇴역시기가 빨라 연금을 받는 기간이 긴 데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수급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연구원에 따르면 군인연금 수급자는 매년 평균 약 2455명씩 증가해 2010년 말 기준 군인연금 수급자 수는 퇴역연금 수급자가 6만1226명, 유족연금 수급자가 1만6988명 등 총 7만9453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수급자가 8만5000여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기에 연금산정 기준보수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보험료율도 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돼왔다는 점이 재정악화를 심화시켰다.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올해 군인연금 적자 규모는 2조2895억원에 달한다. 2001년 5514억원이었던 군인연금 국고보전금은 2010년 1조원대에 진입했으며 올해까지 총 누적액은 14조1539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국방부는 군인연금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27% 인상되고 유족연금 지급률도 종전 70%에서 60%로 줄어드는 군인연금법 개정안을 공포,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군인연금 가입자들의 기여금 납부비율은 기준소득월액의 5.5%에서 7%로 인상됐다. 급여산정 기준도 종전 '퇴역 전 3년 평균 보수월액'에서 '전 재직기간 평균 기준소득월액'으로 변경돼 연금 지급액이 줄었다.
그럼에도 과도한 혜택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연금수령액과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인연금에 대한 관리 소홀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군인연금 부정수급으로 환수가 결정된 금액이 15억7000만원에 달했다. 범죄로 수급자격을 상실한 제대군인은 물론 사망자에게도 잘못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운용수익률도 저조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2 회계연도 결산 중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군인연금 운용수익률은 연 3.05%로 공무원연금까지 포함한 국내 4대 공적연금 가운데 가장 낮다.
■현실 감안한 수급기준 재조정 시급
그렇다면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의 이 같은 재정문제와 제도적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하는 연금의 특성상 재정 문제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신대 배준호 교수는 "일본의 경우 향후 100년간 장기플랜을 이미 마련한 상태"라며 "반면 우리의 경우 20~30년 전부터 철저한 계획을 세웠어야 하는 데 방치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단 사학연금의 경우 국가에 기댈 게 아니라 스스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배 교수는 "사립학교 직원들은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자구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정부가 마치 공무원연금을 대하듯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은 기금이 모자라면 국가가 지급하게끔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학연금은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금에 적자가 생기면 정부가 지원해 주는 태도를 보이니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배 교수는 "보험료율만 대폭 올릴 경우 연금 대상자들은 지금 연봉의 절반을 연금에 쏟아부어야 하는 큰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정부가 어느 정도 지원금을 주는 대신 사립학교 법인과 연금 대상자들의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는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신화연 부연구위원은 "사학연금은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줄면서 정규직 교수, 선생이 덩달아 줄고 대신 기간제가 활성화되면 가입자 수는 불안정한데 연금 수급자만 늘게 된다는 것이다. 신 부연구위원은 "재정 측면에서만 보면 보험료율을 올리고 수급액을 낮추면 되겠지만 이직이 잦다는 직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인연금에 대해서도 정부가 지원하되 현실에 맞게끔 수급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배 교수는 "직업 특성상 퇴역 이후 재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요즘은 여건이 좋아져 재취업이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연금 수급 연령을 공무원에 준해 퇴역 직후가 아닌 60세 이후에 받도록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신 부연구위원도 "민간기업에 대한 일자리 알선이라든지 일자리 교육이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 단계적으로 연금 수급 연령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재해는 고용주인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연금회계와 재해보상을 나눠서 국가 보조금을 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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