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영어사용 어디까지?

파이낸셜뉴스       2014.09.18 15:10   수정 : 2014.09.18 15:10기사원문

#. 대기업 직원인 김모씨(52)는 지난달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으로 도입된 '아이핀'을 발급받았지만 사용하지 않는고 있다. 아이핀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표기해야 하는 '문자입력' 때문이다.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인 해당 문자를 알아보기 어려워 '음성듣기'를 클릭했지만 숫자까지 모두 영어로 읽어주는 통에 당황스럽기만했다.

#.경기 부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조요한씨(50)는 공공기관에서 영어로 쓰인 자료를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조씨는 "우리나라 국민을 상대하는 국가기관에서 왜 한글이 아닌 영어를 이렇게 많이 쓰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영어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최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 슬로건은 물론이고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한 인터넷 본인인증에까지 영어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공공기관의 영어 사용'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한글로도 충분히 가능한 부분까지 영어를 이용하다보니 영어를 잘 모르는 시민들은 행정서비스에서 소외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글로벌시대를 맞아 영어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를 '공공기관 영어사용 어디까지?'로 정해 실태와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본인인증부터 슬로건까지 영어일색

아이핀(i-PIN)은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최근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아이핀은 인터넷 개인 식별 번호의 약자로 주민등록번호 대신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데 쓰인다. 기존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을 인증하듯히 웹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이나 결제 등에서 필요한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한다.

그런데 아이핀 사용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주로 40대 중후반 이상에서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수단이다보니 사용 초반 불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실상 영어가 주 언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특히 아이핀의 경우 아이디와 비밀번호 외에도 사용시 요구하는 문자열을 표기해야 하는데, 이 문자열이 숫자와 알파벳만으로 쓰여져 알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휘어진 글꼴와 실선까지 더해지면 당췌 무슨 말인지 알수도 없고, 음성으로 알려주는 도움 역시 영어로 말해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더욱 사용하기가 어렵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슬로건이나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영단어에도 시민들은 그 필요성 여부에 의문을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전국 지자체 중 'Hi Seoul Soul of Asia'(서울), 'Dynamic BUSAN'(부산) 등 영어 슬로건을 사용하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명대 국어문화원이 최근 'Amenity Seocheon'(서천군) 등 영어로 쓰인 충남권 지자체 12곳의 슬로건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 비율이 평균 56%을 넘었다. 지역 행정기관이 익숙지 않은 영어나 한자어를 사용해 생기는 불편함도 있다.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에 따르면 어려운 행정용어로 인해 국민들이 추가로 지출하는 시간 비용은 연간 약 118억3000만원에 달한다.

■"이왕이면 한국어로" vs. "영어가 더 효율적"

공공기관의 영어사용 추세를 놓고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공공기관인 만큼 국민편의 제고 차원에서 가급적이면 한국어를 써야한다는 의견과 영어 사용이 때로는 효율적이며 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아이핀의 경우 젊은층인 20~30대에선 문제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대학생 김모씨(22)는 "인터넷에선 다들 알파벳 입력을 요구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주부 최모씨(49)는 "입력해야하는 알파벳이 무척 부담스럽다"며 "내 또래만해도 영어때문에 인터넷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람이 많은데 더 나이드신분들은 더 그렇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공공기관의 영어사용에 대한 평가도 두 갈래로 나뉜다. 직장인 이모씨(27)는 "공공기관인 만큼 어느 상황에서든 한국어를 제대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학생 김모씨(25)는 "슬로건의 경우 대외 이미지가 더 중요한 만큼 적적한 영어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은 인지하고 있다. 아이핀 관리처인 한국인터넷진흥원 측은 "영어로만 안내되는 부분에 대한 조치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지자체에서도 한국어 사용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국어사용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대학생 '공공언어 가꿈이'를 위촉했다. 김진만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은 "앞으로도 공공언어 개선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는 지난 2012년 슬로건을 'Nice JECHOEN' 에서 '자연치유도시 제천'으로 바꿨다.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김종욱 수습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