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⑥)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 "인류 위한 연구, 그 자체를 즐겨라"

파이낸셜뉴스       2015.04.28 16:53   수정 : 2015.04.28 21:54기사원문

1부. 과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6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



"노벨 과학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아졌다. 정부 지원 역시 과거에 비해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는 연구를 하는, 연구를 하기 위한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과학을 연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잊고 무작정 '노벨상'이라는 목적에만 몰두해 있다.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에 대한 재미를 잊은 채 축구 하듯."

【 대전=고민서 기자】 70대 노학자는 여전히 연구 현장에 머물러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끊임없이 파고드는 후배 과학자들의 열정이 느껴질 때면 그의 발길은 어김없이 연구실(학교)로 향했다.

봄기운이 만연한 어느 4월 봄날, 대전 KAIST에서 윤덕용 KAIST 명예교수(76)를 만났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선두주자로 불렸던 윤 교수의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그의 모습에선 소박함이 더 잘 묻어났다. 작고 아담한 크기인 연구실 역시 그와 닮아 있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왜 아직까지 노벨 과학상이 없을까'라는 질문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노벨상에 집착하는 국내 과학계의 풍토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윤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한 해외 유수의 과학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며 "과학이라는 학문을 좇는 연구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도 기초과학과 노벨상이라는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선 안된다는 얘기다. 노벨상은 그저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교수는 "노벨 과학상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어쩌다, 우연히, 끊임없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존재한다"면서 "즉,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노벨상의 명예를 얻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분명 인류를 구원할 순수과학의 발전이라는 노벨 과학상의 취지가 언뜻 원론적인 얘기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에 걸맞은 연구환경과 사회문화가 갖춰진 나라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거 나온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6·25전쟁 직후인 지난 1960년대부터 최첨단 기술이 우리 생활 전면에 활용되는 21세기 현 세대에서도 과학자라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과학계의 수많은 저명인사를 만났고 그 역시 입자 성장과 계면구조 변화와의 관계 정립을 통해 세계적으로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등 다수의 과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윤 교수에게서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주소와 노벨 과학상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 등을 들어봤다.

―카이스트 총장을 거쳐 명예교수, 자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연구라는 게 끝이 있을까.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수십년 전과 비교해보면 성장 가능성이 큰 인재들이 정말 많아졌다. 그 당시엔 먹고살기 바빴기 때문에 노벨상에 대한 관심도, 기대를 해볼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벨상에 좀 더 근접해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적어도 노벨상을 욕심 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왔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학생들의 열정을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릴 만큼의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과학자들의 사기 진작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고도의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반면 과학계를 이루는 환경이 미흡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벨상을 향해 뛰는 인재들이 갖고 있는 마음가짐과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자의 시스템 구조에 변화가 요구된다. 우선 우리나라 과학자들이나 현업에 몸담고 있는 과학 인력들의 모습에선 노벨상이라는 맹목적인 목적이 너무 과열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너무 많다. 노벨상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가치있는 상이지만, 우리가 과연 노벨상 하나를 받기 위해서 수많은 예산과 인력,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과학 기술의 선진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우리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준비하고 마련해야 할 삶의 가치, 이를 위한 게 우리 과학자들이 쏟는 열정의 결과다. 우리나라엔 과연 연구가 정말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하는 과학자가 얼마나 될까.

―국내 사정이 노벨상에 근접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과거와 비교해선 분명 많이 개선된 부분이 보인다. 정부의 예산이라든지 노벨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학계의 열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이 또 다른 노벨상을 낳을 만한 기본적인 환경이 잘 마련돼 있지 못하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주요 연구소들이다. 내가 예전에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독일의 막스프랑크 연구소와 비교해보자. 연구비용을 지원하는 부문은 크게 차이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행정적인 지원체계가 미흡하고,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돼 있지 못하다. 막스프랑크 연구소는 전통적으로 정말 유명한 과학자가 소장이 된다. 아인슈타인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막스프랑크로 연구소명이 바뀌기 전 아인슈타인이 그 당시 소장을 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소장이나 연구원 대표라고 하면 행정적인 개념이 투입된다. 미국은 물론 독일 등 노벨상에 근접한 국가들을 보면 최고의 과학자가 리더를 맡는다. 소장이 연구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함께 과학연구를 이끌어가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되려면 행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연구소장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시간이 허비되지 않아야 한다.

―과학계에 요구되는 변화도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학문의 본질적인 가치를 쫓는 즐거움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자기 자신의 연구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1~2년 내 이뤄낼 일이 아니지 않은가. 자기 삶의 수십년 동안 연구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즐거움이 빠져있다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 일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많은 노벨 과학상을 배출한 일본의 저력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연구에 대한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가 우리와 다른 차이다.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말 자기가 열정을 쏟는 연구가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하는 과학자가 늘어야 한다. 10년 넘게 노벨 과학상을 휩쓴 일본 과학계에선 장인정신에 빛나는 과학자가 많다. 출세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벨상에 집착하는 연구는 지양돼야 한다. 노벨상에 대해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장차 우리나라 과학계를 짊어지고 갈 미래 과학자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학생들에게 해주는 얘기가 있다. '연구가 정말 재미있어서 해라'라는 말이다. 실제 학교 강단에 서면 연구를 즐기는 아이들은 연구실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나와서 공부를 하고 학문을 연구한다. 실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먼저 찾아보고 자신의 열정을 쏟는다는 얘기다. 그런 학생들이 연구 성과도 좋았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그 힘든 과정을 왜 매번 반복할까 생각해보자. 단순히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만이 동기가 될 수 없다. 노벨상을 간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즐거움이 하나의 동기가 돼야 한다. 즉, 말하자면 과학자가 연구하는 본질적인 가치가 투영돼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노벨상,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가.

▲개발도상국에서도 노벨상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등이다.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은 것만으로 이집트의 과학기술이 좀 더 발전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대부분 외국 선진국에서 연구한 것이다. 국내 과학계도 자체적으로 공들여 만든 노벨상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일본의 예를 다시 언급하고 싶다. 일본의 경우 외국 유학을 통해 과학자들이 노벨상은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국내 연구만으로 노벨상이라는 큰 업적을 이뤘다. 이를 통해 일본은 노벨상이 또 다른 노벨상을 낳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실제 첫 노벨상이 일본에 가져다 주는 과학기술의 발전 기여도는 상당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노벨 과학상 최초 수상자를 만들기 위해 집착할 게 아니라, 그 다음 주자를 양성할 만한 기본 환경과 제도적 개선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를 들자면 한두 곳에 너무 많은 예산을 집중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지원을 어떤 식으로 합리적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과학자의 능력과 가능성에 따라 지원을 차등 부여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력 연구투자기관의 선택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차이에 따른 지원 수준이 크다. 실제 과학자들의 능력 분포를 보면 큰 갭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지원 역시 적정 분포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노벨상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과연 우리나라는 단 몇 년 내 이룰 노벨상만을 원하는지, 아니면 그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길 바라는가를 자문해보자. 후자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과학계에 만연해진 실적 위주와 입시에만 치우쳐진 우리나라 교육계에 변화가 있다면 분명 최초의 노벨 과학상이 아닌, 그 뒤를 이를 선수들까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gms@fnnews.com



■약력△76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물리학 학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응용물리학 석·박사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연구원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과 부교수 △한국과학재단 사무총장 △과학기술처 재료과학위원회 위원장 △미국 GE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계면공학연구센터 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 △제9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한국과학기술원 공학부 신소재공학부 석좌·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자연 제3분과 회원 △포항공과대학교 대학자문위원회 위원장 △KAIST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 △미국 세라믹학회 회원 △민군합동조사단 단장

■수상 경력 △한국과학기술처 연구개발상 △호암상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옥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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