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영모델 3.0 구축, 새로운 도전

파이낸셜뉴스       2015.11.09 17:46   수정 : 2015.11.09 21:37기사원문
미국 매출 1위는 월마트지만 시총은 애플, 구글, MS 순
한국은 매출·시총 순위 엇비슷 여전히 과거 경영방식 답습 혁신 없이는 미래 보장 못해









외형성장 중심의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 모델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보다는 질 혹은 외형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 패러다임이 현대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나라 기업경영 모델도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던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모델을 한국형 경영 1.0이라고 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글로벌 선진국 톱10 반열의 역사를 만든 한국형 경영모델은 2.0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과거 1.0모델이나 2.0모델이 급변하는 경영 패러다임 파고 속에서 새롭게 한국형경영 3.0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변곡점에 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외국식 경영을 답습해 모방했던 패스트팔로어(추격자)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나아가기 위한 기업경영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낡은 틀에 갇힌 한국 경영 '혁신 없이 미래 없다'

최근 글로벌 시장은 저성장 국면으로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기업들의 공급 규모는 초과 상태를 맞고 있다. 이에 기존 산업 구조에 안주해 새로운 수요 창출과 질적인 경영구조 개선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계상황에 직면해 구조조정 도마에 오르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환경변화 탓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1세기 경영패턴을 주름잡는 키워드는 대략 여섯 가지가 꼽힌다.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이 오프라인을 압도하는 '디지털화'를 비롯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융복합으로 이어지는 '컨버전스' 및 연구개발의 독자적 소유를 넘어 협력체제를 추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등이다. 한발 더 나아가 수요자와 공급자 간 사업장을 구축해 시장을 선도적으로 장악해가는 '플랫폼 리더십'과 예측불허의 경영환경에 창발성으로 대응하는 '복잡계' 및 차별화와 경쟁우위 간 개념충돌을 넘어 두 가지를 동시 추구하는 '패러독스'도 미래 경영의 핫 키워드다.

문제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구성하는 이 같은 키워드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대응은 아직 초기단계에 머문 데다 이를 넘어선 한국형 키워드를 잡는 데에는 문제인식이 한참 더디다는 점이다.

이 같은 우려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지난 2014년 각각 매출액과 시가총액 기준 미국의 10대 기업의 순위를 뽑아본 결과 과거 매출 중심의 장치제조업과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혁신경영을 구사하는 구글과 아마존 등 온라인 기반 비제조업군에 급격히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는 2014년 기준으 로 4857억달러라는 전 세계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이지만, 시가총액은 2000억달러에 불과해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 10위 안에도 못 들었다. 반면 애플은 매출이 1828억달러로 매출액 기준 수십위권 대에 머물렀지만 시가총액은 6542억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월마트의 40%도 안 되는 매출을 가지고 3배가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애플 외에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월마트와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매출을 가진 기업들이 줄줄이 시장가치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시장 상황이 이처럼 돌아가고 있는 데도 우리나라 시장은 여전히 과거 방식에 안주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2014년 말 매출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10위권에는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GS칼텍스 등 기존 산업군이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온라인 기반의 혁신기업들은 한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5년 10월 1일 기준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아모레퍼시픽과 SK텔레콤 정도가 각각 7위와 10위권을 기록하며 미진하게 변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한국 경영환경의 새로운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신경영변화 방향의 좌표로 이해되는 네이버가 2014년 말 매출액 3조원을 기록한 가운데 2015년 10월 1일 시가총액은 18조원으로 전체 14위를 기록하는 정도다.

■한강의 기적 일군 1.0 경영의 명암

한국형경영 1.0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경영방식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500원짜리 지폐로 선박을 수주해 조선소를 세우고, 포항제철이 신화적으로 준공되고, 삼성반도체 공장이 세워지는 등 신기원과 같은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요인을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선택 △정부의 강력한 경제발전 의지와 수출 지향 전략 △정부가 파트너로 선택한 기업인들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울러 '잘 살아보세·할 수 있다'는 국민, 기업인들의 긍정 에너지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의 시장개방에 힘입어 한·미 우호동맹의 핵심 축인 한국이 미국의 국제분업 전략의 파트너가 되면서 수혜를 입은 점도 성공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경영도 이 같은 환경을 밑바탕 삼아 △25시간 경영 △'질'보다 '양' 추구 △능률강조형 조직 구조 △행동중심의 리더십 △헌신적인 근로문화 △빠른 학습속도 등이 주축을 이뤘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형경영의 저력은 외환위기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한국형경영의 성장동력이었던 장점들이 고스란히 미래경영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작용하는 식이었다. 주로 △정경유착 △오너창업자의 경영권 독점 △전문경영자와 종업원의 무기력증 등 산업정책과 의사결정권자들의 장점이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아울러 △차입에 의한 외형성장 전략 △핵심기술 미비 △저임금.소품종 대량생산체제 △비관련 다각화 △대립형 노사구조 △인재의 중요성 망각 △경영과 회계투명성 미흡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심리 등은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던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김일섭 총장은 "사업영토 확장에 집중하다보니 정경유착과 불공정거래에 대해 안이한 사고가 팽배했었고 오너의 경영활동과 회계처리도 문제점에 봉착했다"면서 "전반적으로 건강한 경영생태계 구축이 뒷전으로 밀리다가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국형 경영 1.0도 막을 내리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영 이끈 2.0시대 '기로'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환위기 여파에 따라 한국형경영 2.0이 출범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의 체질개선과 부채비율 축소 작업이 단행되고 투명한 회계제도 도입 및 선진형 인사조직제도 도입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이 같은 10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단행된 내부혁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저력을 발휘한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가 휘청거릴 때, 한국은 2009년 328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며 독야청청,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2014년에도 글로벌 시장 침체라는 악재 속에서도 경상수지 894억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경영 2.0시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삼성, 현대차 등 주요 재벌그룹들에서 보여진 강력한 카리스마와 기업가 정신을 갖춘 오너 경영자의 스피드 경영과 과감한 투자 결정을 꼽는다. 특히 1.0시대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인의 팀워크 △선택과 집중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과 차별성 확보 △시장과 소비자를 중시하는 R&D, 품질과 디자인 혁신 △성과주의 문화의 정착과 공정한 내부 경영자시장 형성 △개인의 자존의식과 상호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신바람 경영 △뛰어난 응용력으로 원천기술 부재의 약점을 극복하고 한국형 기술, 상품,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 모델 개발 등이 달라진 모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질보다 양에 집착했던 1.0시대에 비해 비교적 경영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경영전략 관점에서 창조적 모방과 빠른 추종자 (패스트팔로어) 전략의 결과로 해석된다.

잘나가던 한국형경영 2.0도 최근 들어 시험대에 올랐다.

샤오미, 알리바바와 같은 중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입과 저성장 늪에 빠진 시장과 대량생산체제의 한계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꽉 막힌 시장의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해선 창조적 경영발상이 요구되지만 한국형경영 2.0 모델이 여전히 과거 1.0시대부터 답습해온 오너중심경영과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혁신경영도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별화된 한국식 K-경영 대안 중지 모아야

한국형경영 3.0 모델에 대한 추구는 이제 걸음마단계다. 아직 명확히 한국 기업만의 특유의 경영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전략에 대해서는 혼선에 빠진 형국이다.

그럼에도 경영전략의 큰 틀에서 보자면 기존의 빠른 추격자에서 벗어나 창조적 선도자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아울러 한국형경영 1.0이 오너들의 역량과 열정이 핵심이었고 2.0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팀워크로 이끌어왔다면 3.0 모델에는 개인의 창의력과 혁신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서 승부가 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새로운 경영모델을 수립할 때 해외 유수기업의 모델을 추구하는 건 2.0시대에 가능했을 뿐 앞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신경영환경에선 우리만의 독특한 스타일 구축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일섭 총장은 "상생과 공존을 중심으로 한 한국적 가치관과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세계 일등주의 등 한국 특유의 기업문화를 재구축해 세계 경쟁의 대열에 다시 나서야 한다"면서 "스피드와 주인의식이 결합된 작고 열린 조직형태라든가 팀 및 개인 보상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다중구조보상 등 인사와 조직 혁신도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병용 김용훈 고민서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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