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억, 54억, 54억.. 탕탕! 낙찰됐습니다"
파이낸셜뉴스
2016.06.29 17:22
수정 : 2016.06.30 07:49기사원문
김환기의 '무제' 최고가 낙찰, 한국 미술품 경매 새 역사 쓰던 날.. K옥션 경매 현장을 가다<br />'푸른 전면 점화' 낙찰되는 순간 장내엔 환호성과 박수 터져<br />수수료 15%, 부가세 1.5%까지 합치면 실제 낙찰가는 62억9100만원<br />이어진 한국화·고미술품 경매에선 '대동여지도' 호가 22억 세번 부를동안 응찰자 끝내 나타나지 않아 유찰<br />'책가도 10폭 병풍'은 1억500만원에 낙찰<br />
"결정하시는 데 시간 좀더 필요하시겠습니까? 네 54억! 새로운 현장 응찰입니다. 54억5000만원, 전화 확인 중입니다. (정적) 다시 한번 여쭤보고 마무리합니다. 54억. 54억, 54억. 탕탕! 낙찰됐습니다."
단색화 열풍의 주역 김환기 화백(1914~1974)의 푸른 전면 점화가 54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장내에는 전에 없던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경매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패들(번호판)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50억원으로 응찰가가 올라갔고 장내가 술렁였다. "미친 거 아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비속어도 속속 들렸다. 중간음을 유지하던 경매사의 목소리는 고조됐고 서면, 전화, 현장 응찰자들의 치열한 경합이 이어졌다. 약 20회에 달하는 응찰 끝에 결국 현장 응찰자가 김환기를 거머쥐게 됐다.
경매는 사전에 작성한 서면 응찰을 포함해 실시간 전화, 현장 참여가 가능한데 같은 가격으로 경합할 경우 서면, 현장, 전화 응찰 순으로 우선 순위가 부여된다. 또 모든 낙찰 작품에는 구매 수수료가 부과된다. 경매사가 최종 선언하는 금액의 15%와 부가세 1.5%를 더해 총 16.5%다. 김환기 작품을 낙찰받은 콜렉터에게 낙찰가는 사실상 62억9100만원이 되는 셈이다.
이날 위작 논란에 휩싸인 '미인도'의 작가 천경자(1924~2015)의 작품은 줄줄이 유찰되는 수모를 겪었다. 34~36번 랏에 걸쳐 3점 출품됐는데 1974년작 '여인'과 1988년작 '아이누의 여인'이 잇따라 유찰되고 1984년작 '브로드웨이'만이 가장 낮은 추정가보다 1000만원 낮은 2억1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경매 등록자 수는 사전 등록과 현장 등록을 포함해 200여명에 달했지만 실제 경매에 참여하는 인원은 손에 꼽았다. 이날 일찌감치 두 작품을 손에 넣은 40대 회사원 유혜경씨는 "경매는 마치 사랑하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상대를 애타게 원해서 연구하고 소유하게 된 뒤에는 안심하지만 허망하기도 하다. 또 새로운 것을 탐하게 된다"며 "이성과 지성, 감성이 모두 결합돼야 한다. 굉장히 스릴 넘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지는 한국화 및 고미술품 경매는 경매사를 바꿔 진행됐다. 조선 최고의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최근 보물 1900호로 지정된 '주역참동계'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군현별 채색 지도로 사료적 가치가 상당한데다가 민간 소장본이 매우 드물어 경매 전부터 관심이 모아졌다. 경매가 22억원으로 호가를 시작했다. "22억 확인하고 있습니다." 22억원을 세 번 부르는 동안 끝내 응찰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어 도가(道家)의 단약(丹藥) 제조법이 담긴 '주역참동계'는 가장 낮은 추정가보다 500만원 낮은 1억7500만원에 현장 낙찰됐다.
고미술품 부문의 다크호스는 세로 30㎝, 가로 109.5㎝ 크기의 '책가도 10폭 병풍'이었다. 당초 추정가 2500만~5000만원이었지만 치열한 경합 끝에 가장 낮은 추정가의 4배가 넘는 1억500만원에 낙찰, 두번째 환호성의 주인공이 됐다. 마지막 출품작 '포도연화원문일월연'(조선시대 벼루)이 대미를 장식하듯 가장 높은 추정가를 크게 웃도는 2900만원에 낙찰되며 경매가 끝났다. 경매를 관전하던 70대 노부부는 "고미술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 겸재 정선의 작품의 추정가가 1억2000만원 수준이라는 건 말도 안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한국화 및 고미술품은 낙찰율이 43%에 그쳤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김환기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자리였다"고 총평했다. 이어 "김환기 자체 최고가 경신,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경신에 의미가 있는 경매였다"며 "낙찰률이 67%로 평소보다 낮았던 것은 도자기 작품의 유찰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