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시걸 '우연한 만남'.. 현실 속 현실같지 않은 일상
파이낸셜뉴스
2016.09.19 17:29
수정 : 2016.09.20 10:43기사원문
조지 시걸(1924~2000)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화단 전체를 풍미하던 1950년대 회화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이내 본인의 표현 욕구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인체의 형태를 그대로 떠내는 작업으로 전환했다. 젖은 석고붕대를 인체에 직접 감고, 마르면 붕대를 떼내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다. 1970년 이후에는 석고나 실리콘으로 떠낸 외형에 청동을 주입해 형태를 본뜨는 내면 주형 기법을 활용했는데, 1989년 제작된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이 그러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우연한 만남'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든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는 'One way'라고 크게 쓰인 도로 이정표 아래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작가가 제작한 실물 크기의 조각에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구조물을 함께 배치하는 조지 시걸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는 이처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속 일반인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버스 내부, 횡단보도, 대합실에 놓인 인물들의 뜬 듯 감은 듯한 눈과 무표정으로 표현된 얼굴, 단일한 색상이 칠해진 거친 표면은 현대도시에서 익명의 인물들이 갖는 고립감과 고독감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마치 유령이나 그림자처럼 현실과 유사하지만 분리된 잔여물과 같은 조각들은 실제 구조물과 강하게 대비되면서 현실 속 장면 같으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이중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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