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시걸(1924~2000)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화단 전체를 풍미하던 1950년대 회화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이내 본인의 표현 욕구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인체의 형태를 그대로 떠내는 작업으로 전환했다. 젖은 석고붕대를 인체에 직접 감고, 마르면 붕대를 떼내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다. 1970년 이후에는 석고나 실리콘으로 떠낸 외형에 청동을 주입해 형태를 본뜨는 내면 주형 기법을 활용했는데, 1989년 제작된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이 그러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우연한 만남'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조지 시걸 특유의 느낌은 그의 작품이 공공조각으로 제작되면서 더욱 배가됐다. 뉴욕 맨해튼의 오래된 공원인 크리스토퍼 파크에는 조지 시걸의 'Gay Liberation'이 설치돼 있다. 게이 해방운동을 기념해 1979년 주문제작됐지만, 각종 반대에 부딪혀 설치되지 못하다가 1992년에야 현재의 장소에 안착하게 됐다. 한 쌍의 게이 커플을 묘사한 조각 옆에 나란히 앉은 일반인들의 모습은 이제 공원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공원의 풍경을 끌어들여 비로소 완성된 조지 시걸의 작품은 마치 현실인 것처럼, 혹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일상에 조용히 스며든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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