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의장은.. 조영래·김근태와 재야 운동권 대표적 ‘3인방’
파이낸셜뉴스
2017.01.24 17:47
수정 : 2017.01.24 17:49기사원문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오랜 기간 유력한 대선주자로 손꼽혀왔다. 두 차례의 긴 칩거에도 꾸준히 정계의 러브콜을 받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정계복귀에 대한 관측이 쏟아졌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대표와 함께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유신체제 종식 후에는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정치를 시작한 건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손 의장은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다. 보수도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파였다. 1996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후 한약분쟁을 마무리지었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재수 끝에 경기지사에 당선되면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손 의장의 정치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정치인생을 건 그의 모험은 의미 있었다. 손 의장은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패했다. 이어 2008년에는 대선 참패로 어려움을 겪던 당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쓰라린 참패를 맛본 뒤 강원 춘천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2010년 민주당 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해 민주통합당까지 탄생시켰지만 18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밀리면서 대권에 도전할 기회는 잡지 못했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텃밭인 경기 분당을에서 승리를 꿰차기도 했지만 2014년 경기 수원병 재·보선에선 신예인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게 패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정약용 선생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손 의장이 다시 돌아온 건 지난해 10월. 두 손에 개헌론을 들고서다.
손 의장은 '내가 나를 대표한다'를 내걸고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출범시켰고, 제7공화국 건설을 위해 개혁세력의 전사가 되겠다고 자임했다. 그리곤 "피하지 않고 감당하겠다"는 말로 이번 대선에 나서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5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 내내 답변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강한 자신감이었고, 여유로움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친히 배웅하는 친절함에서도 그의 여유로움은 고스란히 묻어났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약력 △70세 △경기 시흥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인하대.서강대 교수 △제14.15.16.18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통합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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