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자본시장 대통령
파이낸셜뉴스
2018.07.10 17:13
수정 : 2018.07.10 17:13기사원문
"이럴 거면 차라리 블라인드 면접을 보는 게 낫지. 때마다 불거지는 정치권 인연과 국민자금을 굴리는 게 도대체 무슨 연결고리인 건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재공모 소식이 들려 온 지난주 무렵,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국민의 노후자금 635조를 굴리는 막중한 자리에 지원한 16명의 지원자 중 유력후보로 꼽힌 곽태선 전 베어링운용 대표가 청와대 막후 실세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권유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당시 CIO를 지낸 홍완선 전 CIO는 최경환 전 부총리와 학연, 지연으로 닿아있었고 전임자였던 강면욱 전 CIO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학연으로 엮여 구설수에 올랐었다.
결국 문재인정부 들어 가장 공정한 잣대로 뽑았다던 곽 전 대표 역시 청와대 최고 권력층의 권유로 인선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이후 여의도 금투업계의 표정도 허탈하기만 하다.
국민연금 CIO는 '독이 든 성배'로 꼽힐 만큼 퇴직 이후 처우가 좋지 않다. 임기는 최대 3년이지만 퇴임 후 3년 동안 유관업종에 재취업할 수 없다. 연봉 역시 성과급을 합쳐 3억원 안팎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제대로 굴려야겠다는 소신자가 지원하는 '명예직'으로 분류된다.
이런 자리마저 정치적 이권에 말리다보니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기금 CIO는 "공개모집 요건부터 당장 개정해야 한다. 세계 3대 연기금 수장의 지원자격이 자산운용 경험 3년 이상이라는 것은 일반 금융사 대리 수준"이라며 "국민연금 CIO직은 최소 운용경험 10~15년 이상의 베테랑이 와야 할 자리다. 결국 운용의 경험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치적, 이권과 연관된 인물로 짜맞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CIO 면접에 이제라도 블라인드 형식을 도입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실제 이번 인선에 참여한 한 후보자는 "면접 당시 불과 20분간 자기 소개 등 형식적인 이야기만 하고 끝이 났다"며 "운용계획이나 투자철학 등 기금운용본부 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을 '들러리'로 취급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인사는 만사다. '자본시장 대통령' 자리가 '자본시장 기피대상 1호'로 변화할 수 있는 길목에 서 있다. 이제라도 정부나 보건복지부 등 상위 기관에서 국민의 알토란 같은 자산을 불려줄 운용 전문가 찾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kakim@fnnews.com 김경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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