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레버는 '착해서' 베트남서 성공했을까…사회적 가치는 '전략'
뉴스1
2019.12.05 07:10
수정 : 2019.12.05 09:14기사원문
일 년 내내 더운 날씨 때문에 이들에게 빨래는 일상과 가깝다. © 뉴스1© 뉴스1
[편집자주]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건 소비이고, 이를 제공하는 건 기업이다.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활동으로 우리의 삶은 부유해졌다. 그러나 기업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발생한 사회문제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됐다. 빈곤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만 창출하던 시대가 끝났다. 이에 뉴스1은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시대적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국내외 사례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물 절약이요? 그건 몰랐네요. 간편하고 세탁 시간이 줄어드니까 쓰죠."
기대와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콤포트 원 린스(Comfort One Rinse)는 유니레버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거둔 최대 성공작으로 꼽힌다.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는 베트남에서 콤포트 원 린스는 빨래를 할 때 헹굼에 사용되는 물을 3분의1로 줄여주는 혁신제품으로 등장했다. 착한 의도가 효과를 거둬 시장 점유율도 40%까지 치솟았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전사적인 역량을 쏟고 있는 우리나라 SK그룹조차도 단 하나의 롤모델로 유니레버를 꼽는다.
여기까지가 기존에 알고 있던 콤포트 원 린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제품이 출시된 지 5년이 지난 현재. 실제로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들은 콤포트 원 린스가 물 절약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손빨래가 일상인 사람들…물 절약이란 사회적 가치 아닌 기능 덕에 '선택'
호찌민시 빈떤(Bind Tan)군에서 만난 후인 티 투 냐(Huynh Thi Thu Nga·54)는 이 제품을 사용한 지 3년이 됐다. 그녀는 세탁기도 사용하지만 수시로 손빨래를 한다.
기존 베트남 사람들의 손빨래 방법은 때를 지운 후 두 번 정도 헹굼을 거친 다음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며 한 번 더 헹구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습관으로 물 낭비가 심한 방식이다.
콤포트 원 린스를 사용하면 세척 후 이 제품을 탄 물에 빨랫감을 담그기만 하면 헹굼과 섬유유연제의 효과를 동시에 거둔다. 빨래를 헹구는데 드는 시간과 노동력이 줄어드는 동시에 헹굼에 필요한 물 두 양동이도 절약할 수 있다. 그녀는 "다른 제품에 비해서 훨씬 쉽고 빨리 손빨래를 끝낼 수 있어서 사용한다고"고 말한다.
베트남은 1년 내내 25~35도 사이 기온을 유지한다. 더위와의 전쟁이 일상인 이들에게 빨래는 우리보다 더 생활에 밀착해 있다. 실제로 잠깐 나가도 땀에 흠뻑 젖어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호찌민시의 중심인 1군에서 약 10㎞ 떨어진 빈떤군은 3층 이하의 가옥들이 대다수인 지역이다. 유난히 햇살이 뜨거웠던 이 날 가옥 곳곳에는 빨래가 널려있었다. 호찌민과 같은 대도시에는 대부분 가정에 세탁기가 보급돼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빨랫감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하기보다는 집 앞이나 옥상 등지에서 그때그때 보이는 빨래를 손으로 처리하는 게 익숙해 보였다.
손빨래가 일상적인 이들에게 콤포트 원 린스는 물 절약이라는 착한 의도보다는 세탁 시간을 줄여준다는 기능적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콤포트 원 린스가 물 절약 효과가 있다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 대부분은 "그런 효과가 있었나"라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반응했다. 깨끗한 상수원이 부족한 것은 베트남 내 오지에 한정될 뿐 호찌민과 같은 대도시에는 상수원이 충분하고, 값도 저렴한 수준이다. 제품을 사용하면 물 절약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발생하지만, 그 자체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계기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사회 문제 해결이 제품 혁신 동력…다우니도 비슷한 제품 출시로 '사회적 가치' 확산
땀 냄새에 대한 고민이 있는 베트남 국민은 섬유유연제에 관심이 높다. 호찌민 시내의 대형쇼핑몰인 이온몰(AEON MALL)의 생활용품 판매대에는 외려 세탁 세제보다 섬유유연제 코너에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샘플로 전시된 섬유유연제의 냄새를 일일이 맡아보며 제품을 골랐다.
콤포트 원 린스가 출시되기 전부터 유니레버는 베트남 세제 시장에서 70% 점유율을 오가며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나 섬유 유연제 시장에서만큼은 P&G의 다우니에 다소 밀리는 상황이었다. 유니레버는 물 절약이라는 사회적 가치에서 혁신의 동력을 얻은 콤포트 원 린스로 승부수를 던졌고, 섬유유연제 시장 점유율을 40%(2016년 기준)까지 끌어올리며 다우니와 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결국 경쟁사 다우니 역시 콤포트 원 린스와 같은 효과를 내는 '원 밴 로'(1 BAN LAW)를 내놓으며 따라왔다. 경쟁사에 맞불을 놓는 용도였겠지만 유니레버가 추구하는 '물 절약'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면서, 사회적 가치 역시 확산하게 된 셈이다.
호찌민의 한 마트에서 만난 응우옌 투이(Nguyen Thuy·26)는 "베트남엔 자체 세제 브랜드가 없어 콤포트나 다우니 중에 선택하게 된다"며 "콤포트 브랜드는 좀 더 앞서나간다는 이미지가 있다"고 말한다.
◇'유니레버=좋은기업' 이유는…사회문제 해결서 아이디어 얻어 '돈'도 번다
베트남 사람들이 유니레버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좋은 기업(mot doanh nghiep tot)'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유니레버라는 기업에 관해 물으면 대다수는 '좋다' '깨끗하다' '훌륭하다' 등 긍정적인 단어를 얘기했다.
유니레버는 어떻게 좋은 기업의 상징이 됐을까. 지난 2009년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폴 폴먼은 사회에 해를 덜 끼치는 수준으로 안 되고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앞세워 전사적 혁신에 돌입한다. 우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담당 부서를 해체했다. CSR을 사업과 분리해 일부 직원들이 전담할 게 아니라 16만 전 임직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변화의 대표적인 예가 콤포트 원 린스다. 유니레버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베트남의 '물 낭비'라는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물 절약을 돕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다. 제품을 내놓은 뒤에는 베트남 정부, 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물 절약 세탁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베트남에서 팔리는 유니레버의 제품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 치아 관리 부실이라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한 유니레버의 치약 브랜드 피에스(P/S)는 '베트남 미소 보호'라는 슬로건을 걸고 올바른 양치습관을 교육에 나서고 있다. 화장실 청소 세정제 브랜드인 빔(VIM)은 '깨끗한 화장실 보급 사업'을, 비누 브랜드 라이프부이(Lifebuoy)는 '손 씻기 캠페인' 등을 내세운다.
유니레버는 이런 사회공헌 캠페인을 다시 광고에 활용해 '유니레버가 베트남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내보낸다. 실제 사회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막연하지만 분명하게 각인된 긍정적 이미지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고, 다시 판매량 증대로 나아가게 된다. 사회공헌 캠페인은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것이다. 유니레버가 사회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는 비영리재단이 아닌 사회 문제 해결에서 '돈'을 보는 영리기업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대학생 호아 짱(Hoa Trang·22)은 "TV에서 나오는 유니레버의 광고는 공익적 성격이 많아서 유니레버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며 "여러 브랜드 중 고민이 될 경우 비슷한 가격과 기능이라면 유니레버를 선택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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