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위기관리·공동체 의식…'3C의 힘' 잃어버린 20년 넘었다

파이낸셜뉴스       2020.06.25 16:50   수정 : 2020.06.25 16:50기사원문
4. 해외 100년 기업 - 일본의 장수기업들

【 도쿄·서울=조은효 특파원 윤재준 기자】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초부터 이어진 소위 '잃어버린 20년'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여파로 2000년대 중반까지 기업 도산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 기업은 무려 3만개나 된다.

25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 창업한 지 100년 이상 된 기업은 약 3만개다. 또 전체 상장사 3600개 중 100년 기업은 15.5%인 560개에 이른다.

이 일본 특유의 '생존의 유전자'는 과연 무엇인가. 일본의 장수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는 '3C'의 힘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에 대한 천착으로 요약되는 장인정신(craftsmanship),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기업 공동체 의식(sense of community)의 '3C'가 현재 3위 경제력을 뒷받침하는 생존의 유전자로 주목받고 있다.

■Crisis management 위기관리- 수익보다 지속성

3C 중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게 '위기관리' 공식이다.

일본에 장수기업이 많은 배경으로 '보수적 경영' 방식이 꼽힌다. 무리한 확장 대신 안정을 택하고 차입경영에 신중했던 것, 이것이 소규모 100년 기업들의 대표적 생존방식이었다. 하라 요시노리 교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일본기업의 장수 비결에 대해 "빠르게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지속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위기관리의 정의도 점차 바뀌는 추세다. 첨단기술의 주기가 짧아졌고, 2008년 리먼사태를 비롯해 이번과 같은 코로나19 사태가 변수로 등장하면서 기업의 위기대응 주기도 덩달아 짧아졌다.

일례로 창업 83년으로 100년 기업을 향해 가는 도요타는 최근 '100년에 한 번 도래했다'는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놓고 "죽느냐, 사느냐"의 각오로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도요타 가문의 4세인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최근 "개혁은 내 대(代)에서 완수한다"며 도요타 조직 및 사업분야에 있어 과감한 개혁을 선언했다. 과거 잃어버린 20년의 암흑기, 2008년 리먼사태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위기가 닥치기 전 위기에 대응한다는 '흑자 구조조정' '리스토라(개혁)' 등이 일본 재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는 모습이다

■Craftsmanship 장인정신- 노벨상으로 입증된 기술경쟁력

지난해 아베 정권이 한국에 대한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를 가하면서 일반에 알려진 모리타화학공업은 창업 100년의 소재기업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매출 1000억원대의 모리타화학공업이 보유한 고순도불화수소 제조기술 하나로 한국 반도체산업의 목줄을 조이려 했다. 현재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에서 소재 국산화에 성공해 되레 탈일본화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는 이같이 잘알려지지 않은 경쟁력 높은 100년 기업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대한 공로로 일본에 27번째 노벨상을 안겨준 요시노 아키라는 대학이 아닌 아사히카세이라는 회사의 샐러리맨 연구자다. 1973년 소니 직원인 에사키 레오나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시마즈제작소 주임이었던 다나카 고이치(화학상, 2002년), 니치아화학공업 소속의 나카무라 슈지(물리학상, 2014년) 등 일본 기업 연구자들의 노벨상 수상은 일본기업의 기술경쟁력을 상징한다.

■sense of Community 공동체 의식- 버블붕괴기 지탱한 고용안정성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PwC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연구개발비 기준으로 1000개 기업의 줄을 세워보니 일본기업은 161개로 한국기업 34개의 5배에 달했다.

기업가와 근로자의 종신고용제, 대기업과 납품업체 간 파트너십, 기업 간 연대방식은 일본 특유의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엔 많이 약화됐으나 고용안정성은 버블 붕괴기에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일본 역시 불공정계약과 납품업체 쥐어짜기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바 있으나 대체로 하도급 관계가 한국보다는 수위가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규모 납품업체라도 해도 기술적으로 무장한 수십년 거래처들이 많기 때문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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