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택배맨 '미스터 미창'을 아시나요?"
뉴스1
2020.07.02 07:20
수정 : 2020.07.02 08:56기사원문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로켓배송 샛별배송 새벽배송 총알배송…'
지금은 누구나 이용하는 서비스가 바로 택배다.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택배맨은 누구였을까? 이 질문의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CJ대한통운이 지난 1일 창립 90주년을 맞아 선보인 '90주년 캠페인 페이지'에 힌트가 숨어 있다.
대한민국의 물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정답은 바로 '미스터 미창'이다.
◇조선미창이 CJ대한통운이 되기까지 90년
국내 물류의 시작은 1930년 4월 1일 문을 연 조선운송주식회사와 같은 해 11월 15일 영업을 시작한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부터다. 인수와 통합, 동아그룹과 금호그룹을 거쳐 이제는 CJ대한통운이 됐다.
1956년 3월 개장한 증권거래소에 12개 국책 회사와 함께 상장했으며, 1962년에는 택배 초기 모습인 택급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택배 기사의 원조라 불리는 '미스터 미창'이 시민들이 구입한 각종 물품 등을 원하는 곳까지 배달했다.
1966년에는 경남기업과 '대한통운경남기업'을 설립해 베트남 군수물자 하역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같은 해 바지선인 '통운 11호'로 한국비료 울산공장까지 당시 동양 최대의 초중량품인 175톤(t) 탄산가스 재생탑을 수송하며 국가 물류를 주도했다.
또 1970년 3월 3일 우리나라 부두에 처음으로 화물 컨테이너가 내려지게 된 순간에도, 1972년 김포에서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는 화물운송을 시작한 것도 대한통운이다.
1984년 10월 서울지역에 한해 소화물 집화 배달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1993년에는 택배 서비스에 나섰다. 한발 앞서 1992년 한진과 금호특송이 출사표를 내밀었지만, 대한통운은 한 번 작동으로 자동 개폐되는 '윙바디 트럭'과 1500kg의 화물을 자동으로 상하차 할 수 있는 '알루미늄 밴카'를 자체 개발하며 1997년 업계 1위에 올랐다.
그사이 주인도 많이 바뀌었다. 1968년 국영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동명증권(동아건설) 그룹에 편입됐다. 2000년에는 대한통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아그룹에서 계열분리돼 2008년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편입됐고, 다시 2011년 CJ가 인수해 CJ대한통운이 됐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CJ대한통운 90년은 대한민국 물류 근대화의 역사이자 최초, 최고, 차별화의 여정이었다"며 "국민과 함께 글로벌 100년 물류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진흥왕 순수비부터 터키 고대유적까지…"역사도 옮겼다"
대한통운이 운송한 것은 화물뿐만이 아니다. 문화재를 통해 역사도 옮겼다.
시작은 1972년 북한산 해발고도 556m 비봉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다. 476명의 인력이 투입돼 2주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운송을 마쳤다.
1975년에는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을 새로 지은 경주국립박물관으로, 1985년에는 '조선 600년 상징'이라 불리는 보신각종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2004년에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보물 수송 작전'이라 불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사도 맡아 완수했다. 490여 대의 무진동 특수 차량과 1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전문 인력이 투입돼 8개월 동안 크고 작은 문화재들을 이전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지난해에는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빠진 터키 고대유적 23개 운송에도 성공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 진행한 '하산 케이프 프로젝트'(Hasankeyf Project)로, 총 무게만 1만2063톤에 달하는 고대 유적 23개를 안전한 장소로 이전했다. 고도의 기술력을 동원한 '無해체 통운송' 방식으로 진행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물류로 역사를 지키고 이어나가겠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문화재 운송 역량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올림픽 '숨은 공신'
대한통운은 국제 스포츠 대회의 숨은 공신이기도 하다. 필요한 물류 전반을 전담해 대회 운영이 완벽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한 마리당 10만 달러를 웃도는 승마용 말을 운송하기 위해 전용 수송 컨테이너를 제작, 60여 마리의 말을 무사히 운송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운송을 전담했다. 88올림픽은 물자 규모부터 엄청났다. 조직 위원회의 준비 물자 약 3만 톤, 참가국 물자 약 1만5000톤, 방송 물자 약 1만6000톤 등 모두 6만1000톤의 물류를 전담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때는 10개 지역의 지사에 월드컵 물자 전담팀을 구축해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다. 각국의 방송사가 입주했던 국제미디어 센터와 지방의 경기장에서 물자 운송이나 국제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전국 40여개 지점과 300여 출장소를 연결하고, 물자 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별 운송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했다. 특히 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성화'의 채화부터 점화에 이르기까지 봉송 과정을 전담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전문 인력, 자원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쏟아지는 물류를 완벽하게 취급하며 국제 스포츠 대회의 조력자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회사 창립 90주년을 맞아 기념 엠블럼을 공개하고, 90주년을 맞는 11월 15일까지 창립 기념 캠페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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