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률 역대 최저 결정한 날의 기록

      2020.07.14 05:00   수정 : 2020.07.14 05:1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20년 7월 14일 새벽 2시 10분께, 2021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50% 오른 8720원으로 결정됐다.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 2.70%,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75%보다 낮은 역대 최저 인상률이었다. 노사정 각각 27명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투표 당시에는 11명이 빠진 16명만 투표에 참석했다.

노동자위원 9명은 삭감 혹은 동결 수준의 인상률에 반발해 투표도 하기전에 회의장을 떠났다. 사용자위원 2명도 공익위원이 제시한 1.5% 인상안도 부담된다며 회의장을 나갔다. 투표 결과는 16명 참석에 9명 찬성, 7명이 반대로 나왔다.
비밀투표 원칙상 위원들의 투표는 비공개지만 사실상 공익위원측 9명의 전원 찬성과, 투표장에 남아있던 7명의 사용자 위원이 반대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자위원들은 코로나19 위기를 이유로 삭감이나 동결을 주장했다.

투표에 참석한 공익위원 9명은 지난해에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할때도 참석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로 두 번의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세번째로 낮은 인상률이었다. 가장 낮았던 IMF 외환위기이던 1998년 2.70%,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2.75%였다.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0%로 사상 최저 인상률을 기록하며 이날 투표에 참석한 공익위원 9명은 역대 세번째로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과, 역대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했다.

하루 전인 13일 오전, 세종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측면 출입구에 설치된 전국민주노총노동조합의 최저임금 인상 시위 천막은 밤부터 내린 비로 반쯤 허물어진 상태였다.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나 대규모 시위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은 2021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를 날이었다. 어떤 예감이 들어서 민주노총이 마련한 반쯤 허물어진 천막의 사진을 찍었다.

출입증을 찍고 청사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청서 외벽의 철골 구조물에 붙어 있는 형형 색색의 최저임금 인상 피켓이 보였다. "최저임금 올리고 치맥 좀 하자". (만에 하나 올해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려도 치킨 한 마리는 1만6000원이다). "언제 주는거야 1만원 ㅆㅃㅃ"(최저임금 1만원은 지난 대선 후보 모두의 공약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고용노동부는 고용행정통계로 본 6월 노동시장 동향을 발표하고 브리핑을 진행했다. 6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1100억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5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실업급여는 6월에 다시 신기록을 갱신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을 잃고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새로 신청한 사람이 6월에만 10만6000명이었다. 그 전에 실업해 6월에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71만1000명이었다. 71만명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 군인 전병력인 61만명보다 많은 숫자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가 고용보험을 내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을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3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4층에서 제8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시작됐다. 모두 참석하면 노동계, 경영계, 정부측 위원 각각 9명씩 27명이 참석한다. 하지만 이날 노동계 위원 9명중 민주노총 소속인 위원 4명은 참석을 거부했다. 회의 추의를 지켜보던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11시께 표결 불참을 선언했다. "경영계에 최저임금 취지에 맞게 삭감안을 철회해 줄 것을 거듭 요구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주노총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포기 선언이었다.

정민정 마트노조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이 회의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하기 전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최저임금 1만원 주장에 대해 알릴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며 "최저임금은 내년도 임금을 결정하는 자리다. 여기있는 누구도 내년 받을 임금을 미리 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는 늘 그래왔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빠진채로 회의는 계속됐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위원 5명은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과 회의를 이어나갔다. 정회와 속회를 반복하던 회의는 자정을 넘겨 14일까지 이어졌다. 자동으로 9차 전원회의로 이어졌다. 14일 오전 1시께 한국노총 위원 5명도 회의장을 나왔다. 노사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자 공익위원들이 1.5% 인상안을 절충안으로 제시하고 나서다. 사용자 위원 중 소상공인연합회 소속 2명도 회의장을 나왔다.


한국노총 소속 위원들은 "1998년 IMF 당시 경제성장률이 -5.5%였는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라며 IMF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이 2.70% 였는데 올해 그것보다 낮은 1.50%를 제시한 기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민주노총과 달리 최저임금 대화의 끈을 이어가던 한국노총도 "1.5%라는 인상안을 공익요원들이 정해놓고 그에 맞춰 작업을 한것"이라고 비판했다.

굳게 닫혀있던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은 1시간이 더 지난 14일 오전 2시15분께 열렸다. 안에서 어떤 논의들이 오고갔는지 뻗치기를 하던 기자들은 알 수 없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권순원 위원(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승순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3명의 브리핑과 질문을 통해 표결 결과에 대해 설명해줬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의 불참 속에서 공익위원들과 사용자위원의 투표로 2021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50%오른 872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계의 비판처럼 공익위원들이 정부의 압박이나 정치적인 계산으로 1.50%라는 수치에 동의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준식 위원장은 "9명의 위원들 각자 본인의 전문성과 공익적인 임무에 충실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공익적으로 의사결정했다"고 말했다.

7월 13일과 14일은 역사, 혹은 기록에 남을 날이다. 13일 코로나19라는 유레없는 위기 상황에서 실업급여 지급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4일 고용보험 조차 가입하지 못하는 다수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상 최저 인상률을 기록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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