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불변' 질량 표준 원기, 한국산 '키블저울'에 흔들린다

파이낸셜뉴스       2020.10.20 17:29   수정 : 2020.10.21 09:30기사원문
새로운 '질량의 기준' 만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진시황, 천하통일 후 도량형 통일
나폴레옹의 미터법 여전히 통용
표준은 국가파워·기술력의 상징
선진국보다 출발 30년 늦었지만
한국 키블저울 최단시간에 개발
"무게 교정하러 한국 오게 될 것"
일상생활 속 측정단위는 물론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 주력산업
글로벌화·고도화에 중추적 역할

무게를 나타내는 ㎏의 정의가 지난해 5월 20일부터 바뀌었다. 무게의 단위 정의가 바뀐지 1년 5개월이나 지난 셈이다. 일상과 산업현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보이지 않는 힘의 변화가 시작됐다.

1889년부터 무게의 표준으로 삼았던 프랑스의 원기는 더이상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등에서는 과학기술의 집약체인 키블저울로 무게를 교정하기 시작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새로운 변화와 우리나라의 다양한 표준에 대해 들어 봤다.

그동안은 금속덩어리 원기를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가 질량 기준을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키블저울을 개발하는 국가가 그 역할을 분담하게 될 전망이다.

표준과학연구원 박연규 국가참조표준센터장은 20일 "우리나라는 아직 원기를 이용해 무게를 교정, 보급하고 있지만 10년내 국산 키블저울로 교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기술 종속국이 아닌 기술 주도국으로 도약한다는 의미다. 박연구 센터장은 "그때쯤이면 아시아권 국가들이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 와서 무게를 교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표준 거머쥔 국가파워의 이동

표준은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이다. 표준은 또 다른 파워를 상징한다. 표준을 주도하던 힘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도량형을 통일했다. 또 유럽에서는 나폴레옹이 정복전쟁을 통해 프랑스가 쓰고 있던 표준단위를 확산시켰다. 당시 17개국이 미터법을 사용하겠다고 미터협약을 맺었고, 이를 기념해 세계 측정의 날이 생겼다.

이때부터 질량, 무게의 표준을 프랑스에 맞췄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원기는 백금에 이리듐을 9대 1 비율로 높이와 지름이 39㎜의 견고한 금속원기둥이다. 각 나라들은 5년마다 한번씩 보유한 원기를 프랑스로 직접 가져와 무게의 정확도를 측정했다.

그런데 이 원기가 100여년간 약 100마이크로그램 정도 가벼워졌다. 결국 2019년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질량과 전류, 온도, 물질의 양을 재정의했다. 즉 기본 단위를 물질이 아닌 값이 변하지 않고 고정된 수 또는 문자로 정의한 것이다. 그결과 북미와 남미 국가들은 더 이상 프랑스에 가지 않고 미국과 캐나다의 키블저울로 무게의 정확도를 측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키블저울 수준 급상승

변화된 질량의 정의를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키블저울이다.

키블저울은 전자기력으로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을 가늠해 고정된 물리상수 값을 기준으로 측정 대상의 질량을 측정한다. 키블저울은 질량, 중력가속도, 전기, 시간, 길이 등 수많은 측정표준의 집합체로서 모든 측정의 불확도가 1억분의 1 수준으로 구현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전세계 5개 표준기관이 참여하는 키블저울 실험에 참가했다. 표준과학연구원의 키블저울은 개발 5년만에 1000만분의 1 수준까지 정확도가 올라갔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30년 이상 늦게 시작한 연구지만 최단기간 내 키블저울을 개발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2012년 연구를 시작해 2016년 처음으로 키블저울을 설치했다. 당시 각 요소의 측정 불확도는 100만분의 1 수준이었다.

키블저울 국제비교 실험은 2년마다 계획돼 있다. 각 나라들이 기술을 점점 발전시키도록 정확도의 수준을 점점 강화시킨다.

과학자들은 무게 측정을 키블저울로 완전히 대체하는 시기를 향후 10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그때가 되면 우리의 키블저울도 기존의 질량 불확도를 넘어서 아시아권 국가들이 한국에 와서 무게를 측정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표준연이 제공하는 측정표준

1980년 10월에 개정된 제5공화국 헌법 제127조 제2항에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헌법을 뒷받침하기 위해 표준과학연구원이 국가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연평균 1만건에 달하는 표준 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쓰는 제품이나 시설의 길이, 무게 등을 정하는 표준은 산업에서 규격을 정하는 성문표준이다. 이 성문표준의 상위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 측정표준. 예를들어 엔진의 볼트를 15㎜로 정하는 것은 성문표준, 그 15㎜가 정확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측정표준이다.

측정표준에 쓰이는 무게와 길이, 질량, 전류, 온도 등의 물리량 교정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관리하지만 모든 산업현장의 측정기 교정을 표준과학연구원에서 다 하지는 않는다.

기업과 연구원 중간의 교정기관들이 연구원에서 표준 측정기를 교정한 뒤 산업현장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길이와 질량을 비롯해 압력센서, 온도계 전압·전류계 등 물리량의 표준이 맞춰진다.

국가 산업이 발전단계에 따라 초기에는 물리량에 관련된 표준을 정립해 나간다. 이후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물리쪽에서 화학표준과 관련된 연구로 확장된다.


표준과학연구원도 국내 산업발전에 맞춰 화학분야에서 사용하는 성분이 정확한지를 판단하는 표준물질까지 보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 고정에 쓰이는 불화수소의 순도를 분석하는 표준물질과 반도체 웨이퍼의 박막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데 쓰이는 박막도 제공한다. 또 올들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물질도 개발해서 보급하기 시작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