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스파이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89) 별세
뉴시스
2020.12.14 10:07
수정 : 2020.12.14 10:07기사원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등 냉전시대 첩보물 실제 영국 첩보원으로 활동중 데뷔, 전업작가로 변해 "문학으로 분류되기 싫다" 여왕 서훈도 거절
르 카레의 판권 대행자 커티스 브라운은 그가 영국 남서부 콘웰에서 폐렴으로 잠깐 앓다가 운명했다고 13일 발표했다. 대행사는 그의 죽음이 코로나19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고, 유족들 역시 폐렴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비롯한 그의 스파이 소설은 세계 추리 소설계의 고전들이다. 그 당시 까지도 문학비평가들이 장르로 여기지도 않았던 추리소설을 엄청난 작품성을 가진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단정하고 온화한 신사의 외모에 복잡하고 기만적인 심장을 가진 조지스마일리 같은 스파이의 대가는 르 카레가 창조한 20세기 스파이소설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작가 스티븐 킹은 " 존 르 카레가 89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올해의 이 지독한 환경이 문학계의 거물이자 휴머니티의 위대한 정신을 희생시켰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마가렛 에트우드도 "정말 애석한 소식이다. 그 분의 스마일리 소설들은 20세기 중반의 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고 밝혔다.
르 카레는 스파이의 세계를 " 인간의 조건에 대한 한 메타포(metaphor . 은유)"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연애소설, 추리 소설, 정격 문학 따위로 모든 작품들을 규정짓는다면 그 어떤 문학계의 파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주인공들을 설정하고 그에 대해서 쓰고 싶은 대로 쓸 뿐이다. 나는 내 작품을 스스로에게도 스릴러나 첩보물, 오락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2008년의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그런 구분이나 규정은 서점이나 비평가들에겐 편리하겠지만 어리석은 짓이며, 그런 구분은 소용도 없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 ) 같은 영국 고전 소설도 역시 스릴러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르 카레의 작품은 대부분 영화화 되거나 TV극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1965년의 '스마일리의 사람들'과 '팅커 테일러'에는 알렉 기네스가 스마일리 역을 맡아 상징적 캐릭터가 되었다.
르 카레가 스파이물에 끌린 것은 성장기의,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매우 복잡하고 시련에 가득찬 삶 때문이었다.
1931년 10월 19일 잉글랜드 남서부의 풀( Poole)에서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로 태어난 그는 전형적인 중상류층 자제의 교육을 받았다.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베른 대학에서 1년간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의무 병역으로 군대에 들어갔다. 거기서 동구권 출신의 귀순자를 심문하는 일도 했고 나중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현대언어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탄하고 점잖은 가정이었지만 그건 환상이었다. 아버지 로니 콘웰은 갱단원으로 사기꾼이었고 보험사기 때문에 감옥에서 복역했다. 어머니는 데이비드가 5살때 가출해서 그가 21세가 되었을 때에야 다시 만났다.
그처럼 어떤 때는 리무진과 샴페인을 즐겼다가 다음 순간에는 집세를 못내 쫒겨나기도 하는 극단적인 불안과 격동의 유년기가 사물과 사건의 표면과 진실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힘을 키워주었다. 복잡한 가정사와 수많은 비밀들이 나중에 추리작가로 성공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르 카레 자신도 1996년에 " 내 초기 삶의 과정은 그야 말로 비밀 속의 생존, 그 자체였다. 온 세상이 적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학 졸업도 부친의 파산으로 인해 입학과 토학을 반복하며 가까스로 마친 그는 졸업후 영국 귀족들의 명문 기숙학교 이튼스쿨의 교사로 일하다가 외교부로 일자리를 옮겼다.
공식적으론 외교관이었지만 실은 옥스퍼드대 재학시절 부터 그는 M15라는 영국 첩보기관의 하급 첩보원이었다. 이후 독일주재 영국대사관의 2등 서기관으로, 실제는 냉전시대의 최전선인 독일에서 스파이로 활동했다.
그의 첫 소설 3편은 그가 첩보원시절에 쓴 것이어서 상관들이 본명을 쓰지말고 가짜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래서 필명 '르 카레'가 생겼고 그는 평생 '존 르 카레'란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그 이름을 선택한 것은 프랑스어를 씀으로써 어딘지 유럽적인,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울림을 갖게 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존 스마일리가 첫 등장한 "콜 포 더 데드" (Call For the Dead. 1961)과 " 살인의 증명 " (1962),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모두 동서로 분리된 베를린을 무대로 동독 스파이와 첩보원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선악의 구분이 어려운 첩보원과 그들의 이중적 삶과 활동을 극사실로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냉전시대의 가장 냉혹하고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인기작가가 된 그는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첩보원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의 작품은 M16인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언 플레밍의 본드 시리즈와 비견되지만 존 르 카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스마일리와 본드의 세계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존 르 카레는 자기가 활동한 당시의 첩보원들은 뭔가 진실을 보고해야 하는 직업, 성직자와 같은 존엄과 책임감을 느끼는 종류의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죽고 죽이는 액션은 그 다음이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틀에 찍어내거나 만들어내지는않는다. 우리는 현장에 있었고, 우리 생각에는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보고하는 것이 우리 임무였다"고 그는 말했다.
르 카레는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자신이 구원받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나는 냉전시대 이야기를 쓰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그래서 정말 기뻤다. 값싼 농담으로 '불쌍한 르 카레는 재료가 떨어져서 이젠 어떻게 하나'라는 말도 있었지만, 스파이 이야기는 언제라도 보따리를 싸서 진짜 액션이 있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 이후에도 르 카레는 "모스트 원티드 맨" (2008)같은 테러와의 전쟁의 스토리와 러시아 범죄조직을 다룬 " 우리같은 종류의 배신자" (2010)등 새로운 소설들을 내놓았다.
르 카레는 엘리자베스 2세의 훈장은 사양했지만 독일의 괴테 메달은 2011년 수상했다. 이유는 영국에서 자기 소설이 문학상을 받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싫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1954년 앨리슨 샤프와 결혼해서 세 아들을 두었고 1971년 이혼했다. 1972년 제인 유스티스와 재혼했는데, 그녀와의 아들이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닉 하커웨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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