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
파이낸셜뉴스
2021.06.15 19:51
수정 : 2021.06.15 19:51기사원문
외모가 빼어난 이는 육체가 건강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언변이 좋으면 설득과 소통에 능하다. 글을 잘 쓰면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할 수 있다. 판단력은 통섭력과 위기관리력으로 이어진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과 기상, 깊이와 창의성을 알 수 있다면서 명필가를 우대했다. 7세기 당나라에서 시작한 과거제도는 글짓기와 글쓰기 위주의 인재 채용이었다. 글이 곧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외모와 언변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같은 붓글씨를 한국에서는 서예라고 한 반면 중국은 서법, 일본은 서도라고 규정할 정도로 동양 3국의 정신문화는 달랐다.
36세, 0선의 제1 야당 당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중의 관심사다. 따릉이 자전거 출근에 이어 대전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글씨가 논란이 됐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소 소심하고 삐뚤빼뚤한 손글씨를 남겼다.
현충원 참배와 방명록 작성은 우리 사회의 상징적 정치 현장이다. 큰 꿈을 품은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서예는 기본이었다. 이 대표의 손글씨는 기성 정치인들의 준비된 필체와는 달랐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젊은이다운 디지털 필체였다. 네티즌들은 이를 문제 삼는 사람들의 꼰대적 사고를 공격했다. 이제 글씨도 세대전쟁이다. 1300년 동안 인재채용의 기준이었던 신언서판은 여전히 유용한가 아니면 버려야 할 유산인가.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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