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법안, 버려지는 民心
파이낸셜뉴스
2021.08.26 18:34
수정 : 2021.08.26 18:34기사원문
법안은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따로 몇 개월~1년 정도 적응기간을 두고 시행하기도 한다. 그만큼 법안 하나를 발의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엄청난 비용이 든다. 통상 한 개의 법안이 만들어지고, 국회에서 논의되고, 실제 효력을 내기까지 대략 1억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돈으로 따질 수 있는 영역 밖이다. 법안을 결코 허투루 낼 수 없는 이유다.
먼저 국회의원실이 공들이고 발품 팔아 국민 실생활에 꼭 필요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을 뜯어고치려 법안을 만든다. 이어 국회 상임위원회나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법안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 소요비용 등을 깐깐하게 따진다. 문제가 있으면 수정해 완성도를 높인 뒤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로 간다. 이 과정에서 많게는 수십개 법안들이 하나의 법안(상임위 대안)으로 묶인다.
장기거주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도 빠졌다. 본지 보도 내용을 토대로 발의된 지방세법 개정안도 올해 초 대안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 법안은 지방에 있는 땅이나 건물을 판 뒤 내는 양도소득세 중 개인지방소득세(10%)를 소유주 거주지가 아닌 토지나 건물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내도록 해 지방의 재정자립도를 높여주자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있는 땅이나 건물을 팔면 개인지방소득세를 부자동네인 서울 말고 땅, 건물이 있는 지방 지자체로 줘 지방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과잉입법도 문제다.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이 처음으로 1만건을 넘었다. 4년 국회의원 임기 내 처리되지 않는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직전 20대 국회 4년간 자동폐기된 법안만 1만5000건에 달한다. 대략 1개 법안당 1억원으로 치면 1조5000억원을 낭비한 꼴이다. 돈으로만 따져서 그렇다는 얘기다. 자동폐기됐더라도 다음 국회에서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글자 몇 개 고쳐 다시 발의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1호 법안'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보좌진이 국회 의안과 복도에서 밤을 새우는 진풍경도 나왔다.
법안은 민심의 거울이라 했다. 1만5000건의 법안이 빛도 못 본 채 버려졌다면 거기에 녹아있는 민심도 함께 버려지는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백성의 마음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특권을 가졌나.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