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무료급식소 노숙인들과의 밤]
직장 잃고 뇌출혈…밥 한 끼에 섞인 한숨
"배 불렀다 욕해도 시설은 못 가...답답해"
여성들은 성폭행 위험까지 매일 밤 '불안'
직장 잃고 뇌출혈…밥 한 끼에 섞인 한숨
"배 불렀다 욕해도 시설은 못 가...답답해"
여성들은 성폭행 위험까지 매일 밤 '불안'
무료급식 줄은 한 끼를 해결하는 자리이자, 거리의 사정이 모이는 현장이었다. 서울역 일대를 돌며 노숙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었다. 시설을 떠나 거리로 남는 이유와, 같은 처지에서도 더 조심히 움직여야 하는 여성 노숙인의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여기 무료 급식 줄 맞죠?”
1일 오후 7시께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앞. 기자가 줄 끝에 서자 앞에 있던 남성이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낡은 배낭을 멘 중년 남성들, 비닐봉지에 옷가지를 담아 든 노인들, 손에 물을 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날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역 출구 주변과 지하 통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출구 앞과 벽면, 계단 아래에는 각종 가방과 종이상자, 접어 둔 이불들이 놓여 있었다. 해가 기울자 사람들은 조금씩 같은 자리로 돌아왔고, 무료급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울역 주변의 움직임도 한곳으로 모였다.
줄에 선 인원은 100명 안팎으로 보였다. 그 가운데 여성은 5명 정도였다. 대부분 50대로 보였다.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짧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여성들은 줄 한가운데보다 가장자리 쪽에 서 있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서 있거나 주변을 한 번 더 살피는 모습이 많았다.
배식이 시작되자 도시락과 바나나, 물이 차례로 건네졌다. 기자도 식사를 받아 바닥에 앉았다. 삼삼오오 모인 노숙인들은 처음에는 말이 거의 없었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소리, 일회용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만 이어졌다. 몇 숟갈 지난 뒤 옆자리에 앉은 남성이 먼저 말을 걸었다. 취재를 왔다고 하자 그는 “처음 와봤어요? 여기 며칠만 있어도 얼굴 다 익어요”라고 말했다.
일부 노숙인은 "그쪽은 고기가 더 많은 것 같다"면서 다가오기도 했다. 밥을 함께 먹으며 살아온 과거, 왜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한 40대 후반 남성은 뇌출혈로 쓰러지며 직장을 다닐 수 없었고, 우울증 등 병까지 겹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도시락을 비운 뒤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누이고 스쳐 가는 직장인들을 지켜봤다. 한 외국인 관광객이 노숙인들을 보며 "서울역엔 노숙인이 참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숙인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차가운 냉기 위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욕 먹는거 잘 알아요" 그럼에도 시설을 피하는 이유
인근 지하도에서 지내고 있다고 밝힌 50대 김모 씨는 도시락을 전부 비운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는 “이제 좀 살 것 같다”며 웃었다. 어디서 지내느냐고 묻자 “그날그날 다르다. 역사 쪽으로 가기도 하고 밑으로 내려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아침 점심은 종로 쪽에서 먹고 저녁은 여기서 먹는다"고 말했다.
시설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거긴 시간이 있잖아요. 밥 먹는 시간, 들어가는 시간, 자는 시간. 그걸 다 맞추는 게 더 답답해요.” 그는 “불편해도 밖에 있으면 적어도 내 발로 움직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가 불렀다고 할 수 있는데, 난 너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60대 박모 씨도 말을 보탰다. 그는 “시설은 잠자리가 문제가 아니다. 사람하고 계속 부딪히는 게 힘들다”며 “안 맞는 사람은 며칠 못 버틴다”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성은 “모르겠다, 그냥 좀 답답하다. 숨 막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며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들은 말은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리 노숙인이 생활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체생활과 규칙 때문에’가 36.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실내공간이 답답해서’ 16.6%, ‘시설을 잘 몰라서’ 14.2%, ‘다른 입소자와의 갈등’ 11.5% 순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거리 노숙인의 오늘 밤 잠자리는 거리·광장 36.9%, 지하 공간 28.9%로 집계됐다. 잠자리를 고른 이유로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편해서’가 22.7%, ‘주변에 다른 노숙인들이 있어서’가 16.6%였다.
복지부 조사에서는 노숙인의 건강 문제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2024년 조사에서 우울증 유력 비율은 28.7%였고, 많이 발견되는 질환으로 정신질환은 25.8%였다. 시설을 꺼리는 이유를 성격이나 태도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복지부는 거리상담과 일시보호시설, 임시주거, 여성 거리노숙인 전담조직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시설 규칙과 집단생활 부담, 다른 입소자와의 갈등 때문에 시설 적응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거리에서 접촉해 응급보호와 주거지원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병행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시설 적응보다 주거 연결에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주거 우선’ 원칙에 따라 쉼터 적응 여부보다 영구주거 연결을 앞세운다. 치료나 상담, 서비스 참여를 입주 조건으로 걸기보다 먼저 거처를 마련한 뒤 필요한 지원을 붙이는 방식이다. 일본도 자립지원센터 입소만으로 문제를 끝내지 않고, 퇴소 뒤 다시 거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상담과 거주 유지 지원을 이어가는 쪽에 가깝다. 시설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보다 지역에 정착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두는 셈이다.
"우린 안 보이고 싶어요" 스스로 고립 자처하는 여성 노숙인들
무료급식 줄과 서울역 주변을 오가며 눈에 들어온 것은 여성 노숙인의 수가 적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가 적다고만 보기는 어려웠다.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오래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고, 줄에서도 가장자리 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줄 끝 쪽에 서 있던 한 50대 여성은 기자가 말을 걸자 주변을 먼저 둘러본 뒤 짧게 답했다. “여긴 오래 서 있으면 괜히 눈에 띄어요.” 밤에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사람 좀 있는 데 근처로 간다. 너무 외진 데는 못 간다”고 말했다. 시설에 대해서는 “가본 적은 있는데 불편했다. 조용히 있고 싶어도 그게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남자들은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데, 여자는 그게 안 된다”며 “밤 되면 계속 둘러보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역 주변에서 여성 노숙인을 잘 보기 어렵다는 말에 그는 “안 보이는 게 없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서울시의 2020년 ‘재난 상황에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여성 10.1%, 남성 0.7%였다. 여성 응답자는 잠자리를 정한 이유로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를 31.8%로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24년 보고서에서 여성 노숙인이 낙인과 폭력 위험을 피하려고 자신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복지부도 2023년 여성 거리노숙인 전담조직 사업을 발표하면서 “특히, 여성 거리노숙인은 위험에 더 취약한 만큼 보다 세심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숙인이 많이 모이는 지하 통로에도 이런 차이는 이어졌다. 밤이 되자 계단 아래와 벽면 쪽에는 종이상자와 담요, 배낭이 다시 놓였다. 이미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도 보였다. 남성들은 출구 앞이나 통로 벽면 쪽에 상대적으로 쉽게 눈에 띄었지만, 여성들은 늦은 시간에 통로 끝이나 벽면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역 인근에는 ‘뜻하지 않은 임신·출산 함께 돕겠습니다’ ‘위기임신 비밀상담 1308’ 문구가 적힌 안내 차량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지원 안내보다 먼저 밤의 위험을 말했다. 오래 서 있으면 눈에 띈다는 말, 너무 외진 곳은 갈 수 없다는 말은 여성들이 왜 같은 공간에서도 더 조심하며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밤 10시를 넘기자 무료급식 줄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완전히 흩어지지 않았다. 일부는 출구 앞 바닥에 앉았고, 다른 노숙인들은 지하 통로로 내려갔다. 낮 동안 정리돼 있던 짐들도 다시 펼쳐졌다. 서울역 주변은 다시 잠자리 공간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시설 입소 여부만으로 풀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극단적 주거 취약계층인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회에서 송아영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설은 주거가 아니다”라며 “주거는 자립의 전제이지, 자립의 보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센터장은 시설 유형에 따라 자립 지원과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지원주택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취재는 자정께 끝났다. 무료급식 줄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시설보다 거리의 익숙함을 말했고, 여성들은 같은 거리에서도 사람들 눈에 덜 띄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역의 밤은 ‘그들이 시설로 왜 안 들어가느냐’는 질문보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 시설이 끝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으로 남는지부터 다시 묻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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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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