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낭비가 된 대선 토론회

파이낸셜뉴스       2022.02.22 09:08   수정 : 2022.02.22 09:15기사원문



요약

·격투기처럼 치고 받는 대선 토론회는 전파낭비다

·불량식품 강매에 선택권 없는 유권자가 불쌍하다

·남은 두 번의 토론에선 제발 품위를 지켜달라

[파이낸셜뉴스] 이 정도면 전파낭비가 아닐까.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1차 법정토론을 2시간 동안 지켜본 소감이다. 원래 토론 분야는 경제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장동을 놓고 수시로 충돌했다.

화천대유 녹취록 패널도 등장했다. 죽어, 음해, 거짓말, 말 바꾸기, 허위사실, 후보 사퇴 같은 험한 말이 수시로 오갔다. 거친 입씨름 속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주먹질, 발길질만 없었지 무슨 격투기를 보는 줄 알았다.

반칙도 이 정도면 프로급이다. 차기정부 경제정책을 두고 진지한 대화가 오갈 걸로 기대한 내가 순진했다. 민생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후보들은 오로지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탱크처럼 상대를 깔아뭉갰다. 축구로 치면 비신사적인 상습 반칙으로 당장 퇴장감이다. 일찍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정치는 4류라고 말했다. 곱씹을수록 그의 혜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제를 아예 말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자영업자 지원, 재정, 부동산, 세금을 놓고 그저 말꼬리를 잡는 데 그쳤다. 경쟁자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너는 틀렸다”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틈만 나면 서로 할퀴었다. 한국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줬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소중한 저녁시간을 두 시간이나 할애한 나만 바보가 됐다.

1차 법정토론회는 둘로 쪼개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정치는 갈등을 치유하라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는 되레 갈등을 부추기는 주범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을 남겼다. 토크빌이 21세기 한국 정치를 봤다면 “모든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단 한국은 예외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국민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정치는 되레 당쟁을 일삼던 시대로 후퇴한다.

유권자는 격투기를 보려고 TV를 시청한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공존, 공생의 길을 찾고 싶었다. 결국 시간만 낭비했다. 명색이 대선 후보들이라면서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했다. 정치 시장은 불량식품을 강매한다. 선택권이 없는 한국 유권자가 불쌍하다.

마이동풍식으로 제 주장만 늘어놓고 상대방 말에 귀를 막으면 토론이 왜 필요한가. 철천지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 이렇게 싸울 것 같진 않다. 이래선 누가 당선돼도 차기 대통령은 실패할 공산이 크다. 야당과 협치가 안 되면 어떤 정부도 성공하기 힘들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함성득 교수(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중 하나로 만남과 경청을 든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대통령은 여야관계에서 어려움 심지어는 정치적 굴욕 등을 겪더라도 국민이 원하는 편안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꿈같은 일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유능제강(柔能制剛)을 말했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산 나무는 부드럽다. 그래야 잎이 나고 꽃이 핀다. 죽은 나무는 딱딱하다. 잎도 안 나고 꽃도 안 핀다. 모든 생명은 부드럽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법정토론회가 앞으로 두 번(2월25일, 3월2일) 더 남았다. 간곡히 당부한다. 다음엔 꼭 대통령 후보다운 품위를 지켜달라. 더 이상의 짜증 유발은 사양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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