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줄에 사진도 삭제…일제는 우리 신문을 어떻게 검열했나

뉴스1       2022.08.03 14:42   수정 : 2022.08.03 14:42기사원문

'중외일보' 34호 1면 '검열본'(왼쪽)과 '삭제본'. 삭제본을 보면 빨간색으로 검열한 부분이 삭제된 채 배포된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 뉴스1


'중외일보' 107호 2면 '검열본'(왼쪽)과 '삭제본'. 검열을 통해 1919년 3월1일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의 사진기사가 삭제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일제강점기 검열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일간지 '중외일보'(中外日報)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달 5일부터 10월20일까지 박물관 1층 로비에서 '중외일보' 검열본과 삭제본을 공개하는 특별전 '일제는 무엇을 숨기려 했는가?'를 연다고 3일 밝혔다.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일제의 언론 검열 흔적이 담긴 중외일보 16개호(27개 기사)가 처음 공개된다.

중외일보는 1926년 11월부터 1931년 6월까지 총 1492호를 발행한 민족지다. 박물관은 1926년 12월부터 1931년 3월 사이에 발간된 신문 총 838점을 소장하고 있다.

검열을 거쳐 삭제된 기사는 일본 왕가를 모독하거나 일제의 조선 통치를 부인·방해하고, 쟁의를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독립운동가를 옹호하거나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내용 역시 실리지 못했다.

일례로 1926년 12월18일자(34호) 1면은 '일왕의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보도되지 못했다.

애초 신문에는 '새하얀 이불에 덥히신 폐하 / 황후 폐하께서 중신을 부름 / 늙은 신하들이 감격으로 눈물을 흘림' 등의 내용이 있었는데 일본 왕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3·1 운동' 8주년에 나올 예정이었던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927년 3월1일자(107호)는 2면 왼쪽 상단에 수록된 '태화관' 사진과 일부 기사가 삭제된 채 배포됐다.


태화관은 1919년 3월1일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곳인데, 일본은 이 사진이 일제 통치를 부인하는 근거라고 본 것이다.

박물관은 5일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초청해 '일제의 신문 검열과 중외일보'란 주제의 강연회도 연다.

박물관은 소장 중인 신문 전체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 추후 학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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