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이 두렵다" 지하철 역무원의 울분
뉴스1
2022.09.10 06:01
수정 : 2022.09.10 06:01기사원문
[편집자주]일터에 나가면 제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감정노동자'라고 불린다.
손님이 욕설을 내뱉을 때도 화를 삭히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이후에도 이들은 폭행·폭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뉴스1은 콜센터 상담사, 지하철 역무원을 중심으로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보호대책의 한계점을 살펴봤다.
현장에서 체포된 학생은 경찰서에서도 A씨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등 온갖 난동을 부렸다. A씨는 아직도 그 당시를 잊지 못할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인 지하철 역무원은 이용객들의 폭행과 폭언 등 갑질에 놓여 있는 감정노동자다. 하지만 매장 판매원이나 콜센터 직원의 고충에 가려져 감정노동자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감정노동이 사회적 화두에 오르내릴 때도 이들이 처한 현실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역무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부산지하철노조에 따르면 역무원에 대한 갑질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8년부터 26→35→26→41→26건(2022년 5월까지)으로 증가하고 있다.
갑질을 당해도 참고 넘어가는 일부 사례를 고려하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폭행·폭언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에는 마스크 착용 안내에 불쾌감을 드러내 보복 폭행하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정신적인 충격에 휴직을 결심한 역무원들도 있다. 부산 4호선 낙민역에서 근무했던 B씨(40대)는 지난해 말 무임승차를 시도하던 취객에게 승차권 발매를 요구했지만 되레 주먹질이 돌아왔다.
화를 참지 못한 남성은 개찰구를 발로 걷어찬 뒤 가지고 있던 음식물을 역무실에 던지는 난동을 부렸다. B씨는 폭행으로 눈 밑이 찢어졌다.
사고 이후 정신적 고통이 B씨를 더욱 옭아맸다. 그는 "맞고 난 다음날에도 출근하긴 했는데, 그 일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며칠간 잠을 못 잤다"며 "신경까지 날카로워져 동료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내 모습에 놀라 휴직을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가족들한테 알리기도 어려웠다"며 "예전에는 역무실에 불쑥 들어와 커피 타달라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안 된다고 하니 역무실 문을 발로 찼다"고 토로했다.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 역무원 C씨(30대)도 2주 전 부정 승차를 시도하던 젊은 고객에게 역무실로 안내하려다 되레 목을 졸려 상해를 입었다.
하지만 역무원들이 기댈 곳은 여전히 부족하다. 철도종사자 보호법인 철도안전법 제49조에 따르면 폭행·협박으로 철도종사자의 직무집행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사법권이 없는 역무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갑질 이용객을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없어 훈계 조치나 경찰 신고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역무원들은 경찰에 신고해도 보통 철도안전법보다 대체로 형량이 가벼운 폭행죄나 모욕죄가 적용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B씨는 "갑질 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역무원들의 마음도 헤아려주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법권이 없는 역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피해 예방 및 상담 보호 조치에 대한 매뉴얼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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