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뉴스타트' 참여 중단 시사…"핵무기 통제 시대 저물고 있어"

뉴스1       2023.02.22 10:09   수정 : 2023.02.22 10:09기사원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고스티니 드보르 전시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첫 국정 연설을 갖고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러시아 아르한겔스크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시험 발사 중인 RS-28 사르마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022.04.20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러시아가 미국과 맺은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시사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은 유일한 핵 군축 관련 협정을 탈퇴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핵무기 통제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에서 "러시아는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에서는 '조약 탈퇴'가 아닌 '참여 중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협정 복귀 조건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통제를 내걸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는 러시아와 미국이 배치할 수 있는 전략 핵탄두의 수를 1550기, 운반체를 70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양국은 조약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 사찰을 해오고 있다.

미국 과학자협회(FAS)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357개, 러시아는 1456개를 실전 배치해 양국의 보유량 모두 뉴스타트 제한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뉴스타트 규제 밖에 있는 핵탄두 수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2020년 기준 5800개, 러시아는 6357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이러한 추정치 역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폭격기 등 발사체 대수에 핵탄두를 일대일로 매칭한 추산이므로,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이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러시아 전략 폭격기 Tu095 MS16 한 대에는 핵무기를 16개까지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021년 2월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연장을 통해 협정은 2026년까지 연장됐다. 다만 러시아 측에서는 지난해 8월 미국이 자국 시설을 상대로 시행해오던 사찰 활동을 잠정 중단시킨 데 이어 뉴스타트 회의를 일방적으로 연기하며 추가 연장 협상도 답보 상태다.

그간 러시아는 뉴스타트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핵무기를 두고 양국 간 긴장감은 고조돼왔다. 조약이 만료되거나 두 국가 중 하나가 일방적으로 조약을 탈퇴할 경우, 핵무장 잠수함, 폭격기, 미사일을 무제한으로 배치할 수 있어 국제 안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출간된 '핵무기와 강압외교(Nuclear Weapons and Coercive Diplomacy)'의 공동저자인 텍사스 A&M 대학교의 매튜 퍼먼 교수는 CNN에 "푸틴의 발표는 바이든의 키이우 방문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증가에 대한 보복"이라며 "또 이 발표는 러시아가 이미 해온 많은 일들, 미국의 사찰 거부 등을 공식화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트 참여 중단이 실질적인 핵 증가를 의미하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라는 게 중론이다. 위 책의 공동저자인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인 토드 섹서는 "단기적으로 보면 이 발표의 영향은 내용보다는 상징에 가깝다"며 "러시아는 이미 6개월 전부터 핵무기 사찰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갑자기 내일 대규모의 새 무기고를 건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를 위한 단체 글로벌제로(Global Zero)의 존 볼프스탈 수석 고문은 뉴욕타임스(NYT)에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군사적 선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이 러시아와 경쟁하고 중국이 러시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핵무기를 확장해야 한다는 요구를 부추길 것 같다"고 전했다.

CNN은 푸틴 대통령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이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더라도, 뉴스타트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아있는 마지막 핵무기 통제 조약인 만큼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핵무기 경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미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핵무기 경쟁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볼프스탈 고문도 "러시아가 조약을 깨고, 중국이 핵을 늘리고,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하고, 이란이 무기급 우라늄 생산에 가까워지는 현 상황은 핵 안정과 억제에 좋지 않은 시기"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트 탈퇴, 혹은 참여 중단으로 인한 여파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7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서명한 INF(중거리 핵전력 협약)이 바로 그것. INF 조약을 바탕으로 미국과 러시아는 1991년까지 모두 2700기의 미사일을 폐기하는 등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준수하고 있지 않으며 중국이 핵 군축 조약에 가입돼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삼으며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당시 미국은 INF 조약 폐기 하루 만에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의향을 표명하며, 동북아의 긴장감을 키웠다. 이뿐만 아니라 볼프스탈 고문의 말처럼, 미·러 간 핵 군축 협정이 사라지게 될 경우 이들이 비핵국가의 핵무기 보유시도를 제어할 명분도 줄어들게 된다.

특히 미국이 INF 조약 탈퇴 당시 중국의 가입을 촉구한 점, 이번에 러시아가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영국과 프랑스의 참여를 요구한 점 등에 비춰볼 때 세계가 본격적인 신냉전 구도로 돌입했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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