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하락이냐 집값조정이냐"…'뉴스·분양광고' 제대로 읽는 법
뉴스1
2023.03.20 07:37
수정 : 2023.04.27 09:37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 = “암 수술 성공 확률이 95%입니다.” “암 수술 실패 확률이 5%입니다.”
누가 수술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을까.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환자들이 수술의 실패보다 성공에 초점을 더 두기 때문이다. 사실 환자가 생존할 확률은 같지만 받아들이는 어감은 다르다. 이처럼 똑같은 사안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틀짓기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부른다.
언론도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 틀(프레임)을 제공한다. 같은 뉴스라도 신문이나 방송마다 색깔이 다르다. 어떤 뉴스는 정반대의 시각을 드러낸다. 뉴스에 대한 틀짓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들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어떤 뉴스에서는 부동산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정책이라는 중립적인 표현 대신 세금 폭탄 정책이나 징벌적 중과세 정책이라고 쓴다. ‘폭탄’이나 ‘징벌’ 같은 표현은 당사자의 거친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집값 동향을 전하는 뉴스에서도 ‘폭등’과 ‘폭락’이라는 어휘를 쓰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다.
문장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00 지역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실수요자에게 적합하다’라는 부동산 뉴스를 흔히 볼 것이다. 이 기사는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투자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아파트라는 얘기다. 만약에 00 지역이 투자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뉴스가 나가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근거를 대라”며 항의할 것이다. 그래도 투자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긴 해야 하는데,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많으니 실수요자에게 적합하다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또 ‘보수적으로 판단하라’, ‘신중하게 생각하라’ 표현 역시 기자의 솔직한 심정은 어지간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서 ‘00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신중하라’는 조언은 투자했다가는 골치를 앓을 수 있으니 사지 말라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 ‘항상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조언과는 다른 것이다. 부모의 말은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지, 행동 그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집값 하락’을 ‘집값 조정’으로 바꿔 표현하기도 한다. 하락은 가격이 내려가는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조정은 지금은 떨어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를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조정은 미래의 기대가 어느 정도 섞인 단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부동산시장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라는 표현은 거칠게 말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뉴스에서 ‘부동산시장이 불안하다’라고 할 때 ‘불안’은 두 가지 이상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기에 조심하는 게 좋다. 부동산 가격이 많이 내려도 불안,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도 불안이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상품 가격이 변동하는 정도를 뜻하는 변동성은 상승보다 하락을 경계하기 위한 말로 자주 사용된다. 가령 전망보고서에 ‘변동성 위험’이라는 말은 하락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는 순전히 말의 어감 차이로 진실을 못 볼 때가 의외로 많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부동산 광고도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가령 가성비 최고라는 표현은 살기 불편한데 가격만 싼 집일 수 있다. 즉 집주인 입장에서는 ‘실속 있는 집’일 수 있으나 세입자 입장에서 보면 ‘싼 게 비지떡인 집’일 수도 있다. 광고문구에 마을버스라는 말이 있을 때는 지하철에서 멀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또 동네마트에서 가깝다는 표현도 주위에 편의점이나 할인점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단점을 감추려는 언어 프레임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부동산 뉴스나 광고를 볼 때 단어의 행간에 가려진 뉘앙스를 잘 읽어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정말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정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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