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다
파이낸셜뉴스
2023.09.06 18:11
수정 : 2023.09.06 18:11기사원문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운상가라는 열쇠로 열려는 문 너머의 세계가 어떨지 고민하기보다 열쇠 자체만 따지고 있다. 우리가 이 시점에 해야 할 질문은 세운상가가 사라짐으로써 꾸게 되는 새로운 꿈은 무엇이지, 잃어버리는 소중한 것은 무엇인 지다.
세운상가 철거를 통해 얻게 될 새로운 미래는 어떤가? 기존 서울 원도심에 없었던 대규모 녹지가 생겨난다. 북악과 종묘에서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이 연결되고 1㎞의 선형 공원이 생긴다. 인접 민간 부지에서도 녹지공간을 확보해 지상의 15%에 달하는 녹지공간이 대중에게 개방된다. 서울 원도심의 녹지율은 3.7%밖에 되지 않는다. 뉴욕이 26.8%, 런던 구도심이 14.6%임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어떠한 청사진도 완벽한 정답일 수는 없다. 무언가 얻게 된다면 당연히 무언가 상실할 위험도 존재한다. 계획을 통해 잃는 논쟁의 대상은 계획의 열쇠인 세운상가다. 세운상가가 근대 한국건축의 기념비적인 건물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외 여러 사례로 볼 때 물리적으로 세운상가 전체를 보존하는 것만이 그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아닐 수 있다. 온전한 보존을 위해서는 10년 전 안전등급 D를 받은 위험건물에 대한 대책부터 필요한데, 과연 보존을 위한 보전만이 대안인 지에 대한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
세운상가 자체보다 더 중요한 자산은 그곳에 자리 잡은 독특한 '메이커 문화'라는 의견도 있다. 비록 지금의 세운상가는 과거 가전 생산기지로서 역할은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생산 공방이 남아있다. 최근에 입주한 예술가와 스타트업도 새로운 메이커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산업 생태계를 담는 그릇일 뿐, 세운상가가 사라진다고 공방과 장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생태계를 옮겨 담는 일은 업체를 이주시키는 일과는 다르기에 섬세한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지만, 세운상가의 철거가 생태계의 소멸로 귀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운지구를 둘러싼 논의의 쟁점이 건물 철거냐 보존이냐, 변화냐 유지냐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두 극단 사이에는 수많은 대안과 나은 미래가 잠재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는 이제 기념비가 되어버린 과거의 꿈이다. 실패한 과거에 대한 부정은 또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 과거의 누군가 꾸었던 꿈을 지키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꿈을 꿀 권리까지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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