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약했던 이재명의 24일 단식

파이낸셜뉴스       2023.09.24 19:41   수정 : 2023.09.24 19:41기사원문



지난 13일 국회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 탄 이후 기사님께 "국회로 가주세요"라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국회는 가기 싫습니다.

" 기자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내 기사님은 농담이라며 국회로 출발했다.

택시 기사님의 고향은 광주, 지지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지난 13일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단식장소를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본청 안 당 대표실로 옮긴 날이다. 실제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이 대표의 단식장소를 옮기기 위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함께 본 택시 기사님은 기자에게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아직 단식 중이죠? 그런데 왜 단식을 한다고 합니까. 전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요. 아무리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국회에 오기 싫었어요."

단식 24일차이던 지난 23일 이 대표는 드디어 단식을 끝냈다. 당 당무위와 의료진의 강력 권고가 가장 큰 이유다. 이 대표의 단식 기록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을 넘어 정치사에 남을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록 외에 이 대표의 단식은 처음부터 명분이 약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이 대표가 당시 내세운 명분은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사죄 △일본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한 정부의 반대 입장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개각 단행 등이다.

단식 24일차까지 이 대표의 요구는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두 차례 해외순방에 나섰고, 사죄를 할 기미는 여전히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지금도 태평양 바다를 떠돌고 있으며, 내각 총사퇴 역시 어떠한 조짐도 없다.

이러는 사이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쓴맛만 봤다. 당장 26일 이 대표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아야 한다. 원내 지도부가 총사퇴해 국회는 마비됐고, 당내 갈등은 더욱 증폭만 됐다. 이 대표는 단식 전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을까.

이 대표가 단식에 내세운 명분은 민생이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폭정을 막기 위한 것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에 앞장선 것도 민생을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기자가 겪고 있는 민생은 당장 내일 1년 새 2배나 올라버린 전세자금 대출 이자를 갚는 일이다. 택시 기사님이 국회로 오기 싫어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syj@fnnews.com 서영준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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