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1호' 최종길 교수 50주기…"과거청산은 인권·정의 문제"
연합뉴스
2023.10.17 10:50
수정 : 2023.10.17 10:50기사원문
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전원 교수 인터뷰…"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없애야"
'의문사1호' 최종길 교수 50주기…"과거청산은 인권·정의 문제"
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전원 교수 인터뷰…"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없애야"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서울 다크투어'를 지켜보던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가 완전히 잊힌 건 아닌 거 같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최 교수는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의문사한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장남이다.
최종길 교수의 50주기(19일)를 앞두고 최 교수를 옛 중앙정보부 터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최종길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은 최 교수가 열 살이던 1973년 10월19일. 유럽 간첩단 사건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에 자진 출두한 지 사흘 만이었다.
그 해 10월25일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이 간첩임을 자백하고 여죄를 조사받던 중 용변을 보겠다며 7층 화장실에 가 창문으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최종길이 숨지기 2주 전인 10월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가 무더기로 연행됐다.
최종길은 교수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아버지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한 스승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며 반공 교육을 해주던 분이셨어요. 그런 아버지께서 간첩으로 몰려 돌아가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장례식 때 관을 뜯어 열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 앨범을 들춰봤다. 1970년대 초 가족과 함께 미국과 독일에 초빙교수로 간 최종길이 자녀들을 찍은 사진을 모아 만든 앨범이었다.
최 교수는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아버지셨다"며 "저희와 헤어질 걸 꼭 아셨던 것처럼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가셨다"고 회상했다.
'간첩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최 교수는 초등학교도 네 차례나 전학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한 지인은 "그러니까 진작 자수했어야 했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1984년 최 교수는 아버지가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쾰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지도교수인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처럼 민법을 전공했다.
최 교수는 "학교 곳곳에 아버지의 체취가 녹아있는 것 같았다"며 "아버지의 학위 논문이 꽂힌 법학도서관에서 학생 조교로 일하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1993년 귀국한 최 교수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유족이면서 인권법 전문가로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최 교수를 비롯한 유족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2000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었다.
2002년 의문사위는 최종길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살인죄 공소시효(15년)가 지나 의문사위는 고발과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 최종길이 정확히 어떻게 숨졌는지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최 교수는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배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의문사위 발표 직후 관련 법안이 처음으로 국회에 제출됐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
최 교수는 "국가폭력 범죄는 조작·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모르고 지나치는 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했던 최 교수는 국가폭력 희생자를 기억할 '진실화해재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도 과거 청산의 중요한 요소"라며 "희생자의 삶과 유족의 목소리, 사건 자료 등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과거의 인물과 현대의 인물이 호흡할 수 있는 '기억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교수에게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매달렸던 '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법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의 개념 안에는 과거 청산도 모두 포함된 거예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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