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보다 핵잠재력이 먼저다
파이낸셜뉴스
2024.06.26 18:23
수정 : 2024.06.26 19:19기사원문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조야에서도 한국의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한국의 핵무장론을 언급했는데,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나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을 잘 살펴보면 한국의 핵무장 주장을 이해한다거나 핵무장까지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지 이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2025년에 백악관에 복귀한다면 미국의 핵 정책이 조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더 공격적으로 바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바로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기보다는 기존 확장억제의 틀에서 한국의 핵 관련 정책을 관리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비확산이라는 미국의 정책목표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안보 공약이 약화할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은 그동안 쌓아온 미국과의 신뢰에 손상을 가할 것이다. 워싱턴 선언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노력뿐 아니라 한국의 'NPT 준수 의무'를 명기했다. 한국의 핵무장은 워싱턴 선언뿐 아니라 한미 원자력협정 등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었던 양국 사이 합의를 뒤집는 것이다. 한국에는 여전히 주한미군 2만8500명이 주둔하고 있다. 한국의 핵무장은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실효적인 인계철선이라는 동맹의 믿음을 흔드는 행위다.
한국의 핵무장은 "한국의 방어는 한국에 맡기자"라는 미국 내 트럼프류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고, 이는 전략자산 전개 중단,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중단,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한국 핵무장 논의가 동맹의 틀 안에서 차분하고 긴밀히 진행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무장보다는 한국이 핵잠재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양국이 먼저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만약에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한다면 대북 억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 '브레이크아웃 타임'이란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부터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일컫는다. 핵잠재력이란 핵무기를 실제로 만들지는 않아 NPT를 위반하지 않지만, 브레이크아웃 타임을 최소화해 단기간에 핵무기를 제조해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은 당장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일단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 비축하며 핵잠재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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