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전광영 개인전..'인류 역사, 작품으로 승화'
파이낸셜뉴스
2025.01.16 15:11
수정 : 2025.01.16 15:1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서양은 '박스 문화'예요. 직육면체를 정확하게 재 차곡차곡 쌓아 유통하는 거죠. 반면 한국은 '보자기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싸주는 보자기 속에 하나라도 더 담으려는 마음, 바로 한국의 정이자 영혼이죠."
'한지 작가'로 알려진 전광영 작가(80)의 개인전 '집합: 공명과 그 사이(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전(展)이 오는 2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한지로 감싼 삼각기둥 조각은 전 작가가 어린 시절 봤던 '한약방의 풍경'과 '한국의 보자기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약재 봉투는 그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면서 한지에 가지런히 적힌 글씨는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작품 '집합'의 삼각형 조각을 싼 한지에는 서로 다른 고서의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들이 화면에서 우연히 만나고 얽힌다. 이 작업 방식을 통해 전 작가는 각기 다른 지식, 역사, 사상 등을 기반한 이야기들이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인접하면서 조화를 이루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충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집합'은 지난 1995년 처음 등장한 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색채의 사용이다. 그는 한지를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거나 부적이나 신문지와 같은 재료를 사용해 화려한 색감이 강조된 화면을 구성했다.
이런 작업의 단초는 시리즈 '빛'에서 찾을 수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나고 자란 전광영은 어린 시절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색을 보며 영감을 받아 '빛'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렇게 평면 작업에서 일찍이 시작된 그의 구조적이고 구축적인 조형 방식은 '집합' 시리즈의 토대가 됐고, 부조와 같은 회화를 탄생시켰다.
이를 가장 부합하는 대표작 'Aggregation19-MA023(2019)'은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2024)'와 함께 배치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로 폭 11m, 세로 폭 4m의 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수는 마치 관람자를 집어삼킬 듯 시각적으로 경이롭고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려움과 의아함을 증폭시킨다. 그는 두 작업을 마주 보게 놓아 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자연과 인간이 대면한 상황을 연출했다.
신작 'Aggregation24-FE011(2024)'에서는 메마른 땅에 물줄기가 스며 들어오듯 중앙을 가로지르는 파란색 형상이 눈에 띈다. 같은 파란색 계열이라도 한 가지 색이 아닌 여러 가지 파란색이 조각조각 중첩돼 공간감을 배가시킨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 출품했던 첫 입체 작업 'Aggregation001-MY057'을 비롯해 대형 설치 작품 4점도 전시된다. 높이 3m, 1.1m의 원기둥 12개로 이뤄진 'Aggregation001-MY057'은 지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에 5개의 원기둥으로 재구성해 전시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6개의 원기둥으로 재탄생했다.
이밖에 병든 심장 모양의 대형 작업인 'Aggregation15-JL038(2015)'는 죽어가는 사람의 심장 소리와 함께 선보인다.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의 의도다.
즉,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며, 무엇을 잃어버린 채 죽어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객의 답을 기다린다.
전 작가는 이번 전시 작품들에 대해 "지식을 전파하는 수단이었던 옛 문헌의 한 귀퉁이들은 이제 나의 손에서 하나하나 각기 다른 생명을 지닌 정보의 최소 의미로 재탄생하게 된다"며 "논어를 출처로 하는 조각들이 나에 의해 새롭게 배열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모태(母胎)인 논어와 정면으로 대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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