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친척집에 보냈다는 거짓말.. 50여년째 진실 침묵하는 아버지

파이낸셜뉴스       2025.01.20 19:09   수정 : 2025.01.20 21:36기사원문
‘똘똘했던 여동생’ 4살 이정아씨
가정 소홀했던 아버지가 데려가
당시 일기엔 "열차에 놓고 왔다"
경찰선 "미국 보냈다" 진술 바꿔

"무책임한 아버지가 가정을 망가뜨리고 동생마저 버렸어요."

40여년 전인 1973년 동생 이정아씨(본명 이혜정·현재 나이 만 55세·사진)를 잃어버린 언니 이혜연씨는 오랜 세월 아버지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씨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다녀온 직업군인 아버지를 가정에 소홀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돌아왔을 당시 이씨의 어머니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돌보지 않고 집 밖으로 배회하며 다른 여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씨 가족은 아버지가 속한 부대가 있는 경기 파주 용주골에 살았는데, 이곳은 옛날부터 성매매 집결지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만 4살인 동생 정아씨를 수원에 있는 아버지의 외숙모댁에 한 달만 맡기자고 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 동생을 데려오지 않자 어머니는 친척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동생은 그곳에 없었다. 그 친척은 애초에 아버지가 동생을 데려온 적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씨의 손을 잡고 헌병대를 찾아갔다. 당시 베트남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아온 아버지를 경찰이 처벌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씨와 어머니는 서울 용산의 육군본부로 가라는 헌병대의 말에 택시를 타고 달려가 아버지를 고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육군본부에서도 아버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찾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씨는 동생을 잃어버리고 1년여 뒤에 아버지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에는 "인천 가는 열차에 아이를 놓고 와 마음이 찢어진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이씨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기장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을 품고 살던 이씨는 몇 년 전 아버지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너무 늦게 신고했다면서도 이씨를 찾아와 얘기를 듣고 아버지도 찾아갔다. 이씨의 아버지는 경찰에 '당시 미국으로 가는 '양공주' 여성에게 아이를 줬다'고 말했다. 양공주는 미군 등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여성을 비하해 부르는 말로, 당시 이씨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이 한 여성을 소개해 줬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주인 할머니가 우리 엄마 몰래 동생을 보낼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씨가 회상하는 정아씨는 또래에 비해 똑똑한 여자아이여서 가족을 기억할 거라고 했다. 정아씨보다 5살 많은 이씨는 당시 집에서 길 건너편 연풍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정아씨는 학교가 끝날 때쯤 그네를 타고 언니를 기다렸다.
급식으로 나오는 옥수수빵을 먹고 싶어서였다.

이씨는 "자식을 길러보니 세월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 불행하고 동생이 불쌍하다"며 "그해 여름 아버지가 동생과 학교 앞에서 파란색 직행버스를 타고 간 게 마지막 기억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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