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과 규제 무용론
파이낸셜뉴스
2025.04.13 18:36
수정 : 2025.04.13 18:47기사원문
그렇다고 사태를 촉발한 미국의 증시가 버틴 것도 아니다. 지난 2월 2만선을 웃돌았던 나스닥 지수는 1만6000선 초반으로 밀리면서 코스피 하락폭의 두배에 달하는 18%의 급락을 기록 중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 증시로 넘어갔던 서학개미들은 차라리 국내 증시에 투자했어야 했다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역시 부동산이 정답"이라는 목소리도 커진다. 아무리 큰 악재가 휘몰아쳐도 부동산만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배경이다. 실제로 부동산시장은 대내외 변수에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2023년까지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연평균 6.78% 상승했다. 특히 2002년에는 29.27%, 2006년에는 24.61%, 2021년에는 25.42%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훌쩍 웃도는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2000년 이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하락했던 해가 단 6차례에 그친다는 점이다. 가장 큰 하락을 기록했던 2023년의 낙폭은 8.02%다. 2022년 코스피의 수익률이 -24.9%였다는 점을 견줘 보면 부동산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주택정책의 초점은 국민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이 같은 정서와는 결이 달랐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지역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서울 아파트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나온 대책들은 크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마치 중국에서 '상유정책 하유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장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똘똘한 한채' 열풍이 그래서 나타났고, 하급지·중급지·상급지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정책을 '규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그간의 장기적인 집값 상승과 맞물려 규제가 사라지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자리 잡게 만들었다.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확대 재지정' 과정에서 시장의 반응이 그랬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집주인이나 매수자들 모두 당장은 숨죽이며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파트는 이미 국민들 사이에 '안전자산'이 된 지 오래다. 지금 당장 조정이 있어도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국민들 머릿속에 확고하다. 전격적으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짓누른 토지거래허가구역 제도는 분당과 과천의 집값을 올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졌다. '깜짝 해제'와 '깜짝 재지정'은 극단적 상승론자와 폭락론자들에게 먹잇감만 주게 된 셈이다. 부동산시장은 '규제 무용론'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렇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적어도 국민들은 아닌 것 같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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