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장승택 겹 회화 展'..색감서 느끼는 '삶과 죽음' 우리는 깨닫다
파이낸셜뉴스
2025.05.08 13:25
수정 : 2025.05.08 13:2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저는 하나의 색을 예측하고 물감을 쌓진 않아요. 물감을 얇게 칠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물감들은 서로 반응하고 하나의 색으로 귀결되게 해요. 이는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물입니다."
삶이 다층적이지만 결국엔 겹겹의 장막을 통과해야 하나의 윤곽이 나오듯이 그의 작품들도 그런 모양새였다.
'겹 회화'의 대가 장승택 작가의 개인전 '겹 회화: 거의 푸르른(Layered Painting: Almost Blue)' 전(展)이 학고재에서 오는 17일까지 개최돼 푸른색을 중심으로 한 회화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색채의 물질성과 깊이를 탐구하고, 색면 회화의 개념을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다. 특히 그의 '겹 회화' 시리즈는 색의 중첩과 투명성을 활용해 새로운 회화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또한, 색을 감각적이고 공간적인 의미로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장 작가는 원색의 한계를 넘어 다채로운 색감을 구현하는 개념적 색면 회화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색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주제를 통해 푸른색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은 색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형 붓을 사용해 아크릴 물감과 특수 미디엄을 혼합한 안료를 얇게 칠하고, 이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화면을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색은 단순히 덧입혀지는 것이 아닌, 서로 반응하며 예상치 못한 색채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특정한 색은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미묘한 흔적을 남긴다. 중첩된 색의 층들이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인간의 삶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억, 감정이 켜켜이 쌓이고 흩어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며 "색의 조합을 넘어서 존재와 기억, 그리고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색을 통해 존재와 인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색을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 색이 지닌 깊이를 온전히 체험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시간의 흔적을 느끼고,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며, 색이 지닌 본질적인 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Layered Painting 150-29(2024)'나 'Layered Painting 80-20(2023)' 등 검정 계열의 어두운 작품들을 통해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끼게 해준다. 소멸에 대한 두려운 감정은 어두운색에 중첩된 밝은색 사이의 중간 색감에서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장 작가는 "제 작품들은 투명한 색과 중첩으로 마치 환영(幻影)처럼 느껴지는데, 삶과 희로애락,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라며 "이제 저도 60대 중반인데 삶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생각하니, 소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런 감정이 왜 푸른색으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작품들은 마치 죽음 직전 임종의 찰나에 떠오르는 파노라마와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자평했다.
한편, 장 작가는 1959년 경기도 고양 출생으로, 홍익대 서양화과와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 명지대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